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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사우포, 쌍권총을 찬 노회찬

운동권 최초 ‘가지고 다니는 손전화’를 사용한 사람

 

1990년대 초반 핸드폰이 처음 한국에 등장했을 때 저는 당시에 이른바 운동권에서 최초로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지고 다니는 ‘손전화’! 얼마나 편리하고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저는 사업하는 후배에게 백5십만원 가량 하던 모토롤라 휴대폰을 사달라고 요청했지요.
-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모토롤라 tac 5000. 1세대 아날로그 이동통신 단말기로 1990년대 말 단종되었다. 

“그 후 제 꿈은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은 이미 정보의 바다요, 여론형성의 광장이고 대화와 소통의 천국이 아닌가? 이 인터넷을 집과 사무실 책상에 앉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면 이처럼 답답한 일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1990년대 말 정부가 IMT 2000(화상통화가 되는 제3세대 이동통신: 작성자) 정책 추진을 발표했을 때부터 꿈이 현실로 되는 날을 기다려왔는데 현실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 거액을 들여 소형 노트북인 넷북(Netbook)을 구입하고 무선 모뎀도 장착하고 그랬었지요.”
-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무선 모뎀을 장착한 노트북, 노회찬 재단 소장


좌사우포, ‘쌍권총을 찬’ 노회찬


“저는 지금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둘 다 쓰고 있습니다. ‘좌사우포’, 즉 왼쪽엔 사과(애플사의 아이폰), 오른쪽엔 포도(블랙베리)라는 쌍권총을 찬 것이지요.”

진보신당 대표 시절 노회찬은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쌍권총을 좌사우포라고 불렀다. 왼쪽엔 사과(애플의 아이폰), 오른쪽엔 포도(블랙베리)라는 뜻이다. 블랙베리폰을 쓰다 아이폰이 나오자 곧바로 아이폰도 구입했다. 
 
노회찬 대표의 쌍권총, 오른쪽이 블랙베리폰, 왼쪽이 아이폰. KBS <감성다큐 미지수-‘똑똑한 휴대폰의 탄생’편> 2010.1.18

노회찬은 두 개의 스마트폰을 쓰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이동통신사들의 독과점 이윤을 보장해주는 데 급급했던 정부당국이 이 폭발을 예방하고자 정치적 판단을 내린 것이 바로 아이폰 연내 출시 허용이다. 위치정보가 어떠니 하면서 내세웠던 아이폰 출시 불가 사유들은 한순간에 없었던 일이 되었다. 즉각 아이폰 예약을 하였다. 당분간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둘 다 쓰기로 했다. 이찬진 대표는 시간이 지나 블랙베리 중고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처분하라고 충고를 보내왔다. 실제 요금부담이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쌍권총을 차기로 했다. 왜곡된 한국IT 정책의 폐해를 체험하고 무선통신 세계의 변화와 발전을 체감하기 위해서다.”

“블랙베리는 이메일을 확인할 때, 이메일을 보낼 때, 전화통화를 할 때 주로 쓰고요. 아이폰은 트위터, 일정관리, 카메라 촬영할 때 쓰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어디에 와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를 이렇게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제 소견을 얘기한다면 그것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더 나아가서 쌍방향 소통, 그걸 보고 생각이 어떤지 그분들의 감상이 어떤지 또는 새로운 요구나 질문이 어떤지가 바로 이렇게 접수가 된다는 거죠.”

2009년 12월 “쌍권총을 타고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노회찬, <폴리뉴스>에 이런 칼럼을 남긴다. 

“오늘도 나는 쌍권총을 차고 집을 나선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간밤에 들어온 메일을 모두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필요한 것은 저장하고 함께 공유해야할 블로거의 글은 동료들에게 바로 전송한다. 서울시청 앞에서 동절기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주민 기자회견에 참석하여 이분들 사진과 사연을 바로 트위터에 올리니 수백명의 트위터 친구들이 이를 다시 확산시킨다. 용산참사 연내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만난다고 글을 올리니 바로 격려와 유의해야 할 사안을 보내온다. …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 아이들 앞에서 아이폰으로 오카리나 연주를 할 계획이다.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려 한다. 그렇다. 나는 진화한다. 쌍권총을 차고서!”

 

여의도에서 트위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폴리터(Politter)

: 새로운 만남의 감동,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진화하였다”

 
트위터 프로필,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achive.is 2012년 6월 27일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자력으로 가입했습니다!!!”
2009년 7월 6일 노회찬은 트위터를 시작한다. 

노회찬은 ‘디시인사이드’와의 인터뷰에서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저도 처음엔 트위터가 뭔지도 몰랐어요. 주변에서 권하기에 시작했는데, 이건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제 적성에 딱 맞는 거예요. 무엇보다 트위터를 통해 그동안 제가 만나기 어려웠던 분들과 직접적으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더군요. 미처 발로 뛸 수 없는 곳에 계신 분들도 트위터를 통해서라면 언제라도 만날 수 있으니, 제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어준 거죠.”

트위터를 시작한지 1년이 되던 2010년 7월 6일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트위터 시작 1주년의 소감을 이렇게 밝힌다. 

“나에게 7월 6일은 또 하나의 생일이다. 원래 태어난 날이 8월 31일이니 나는 두 번 태어난 셈이다. 물론 2009년 7월 6일, 생소하기만 한 트위터를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새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고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7월 6일 이후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삶의 관계 속에서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느낀 것은 트위터생활 6개월도 더 지나서였다.”

“트위터를 통한 변화 중 가장 감동적인 것은 새로운 만남이었다. 물론 트위터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만남이었다. 트위터를 시작하자마자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미디어법 강행처리 마시라는 트윗을 날렸다가 며칠 후 제헌절 기념식장에서 잘 읽었다는 육성 답변을 들었을 때 트위터가 아니면 불가능한 대화라 생각하며 신기해했다. … 그러나 진짜 감동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던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트위터의 진수는 역시 온라인에서의 소통이다. 그리고 소통이란 말을 나누고 섞는 일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많이 듣는 것 또한 소통의 필수요건이다. 물론 팔로워보다 팔로잉 수가 더 많다. 둘 다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말을 듣고자 나를 따르는 분들보다 그분들 말을 듣고자 내가 따르는 분들이 더 소중하다고.”

“트위터 입문 일 년 동안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그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트위터를 직접 하느냐는 물음이었다. 당연히 비서나 보좌관의 도움을 받으려니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처음부터 나의 대답은 같을 수밖에 없었다. ‘키스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시킵니까?’”

“이제 내 인생은 트위터 이전(before twitter)과 트위터 이후(after twitter)로 나누게 되었다. 새롭게 만난 트윗친구 모두에게 감사의 큰 절을 올린다. 시루떡도 한접시씩 돌리고 싶다. 누가 아는가? 트윗환갑까지 트위터 하게 될지!”


참고로 노회찬의 트위터 팔로워 숫자의 변천사는 아래와 같다. 
- 2010년 2월 현재 2만8천명
- 2011년 4월 22일 현재 11만5141명. 유시민(20만297명)에 이어 정치인 가운데 2위를 기록. 3위는 한나라당 전대표 박근혜(9만1671명)
- 2016년 7월 현재 71만명
- 2017년 8월 100만명 돌파 

노회찬은 트위터 사용자들의 이웃돕기 기부모임에 가서 이런 고백을 하기도 했다.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나 스스로 진화했습니다. (중략) 진보운동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그것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노력이지요. 진보가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이유도 다름 아닌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저 자신을 통해 진화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동시대인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려는 몸짓으로 이해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트위터를 통한 노회찬의 소통과 만남은 점심번개와 막걸리 번개로도 나타났다. 

“이제 노회찬 대표가 여러분이 있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노회찬 대표(@hcroh)와 함께 점심을 드시고 싶으신 분은 트위터로 멘션 날리세요! 트윗밋을 통해 그날그날의 번개를 알려드립니다.”

새벽첫차 6411번 버스 승차 8일 뒤인 2010년 4월 21일. 노회찬은 연세대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만났다. 삶의 애환과 소소한 행복이 담긴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점심번개 첫 번째 자리였다. 노회찬의 점심번개는 트위터를 통해 4월 22일(IT 업종에 종사하는 구로디지털단지 노동자들), 4월 23일(명동 하동관 곰탕과 공원에서의 커피 한잔), 5월 3일(대림역 채식 뷔페), 5월 4일(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 5월 6일(역삼역 대우식당), 5월 7일(여의도 공원 잔디밭 도시락 번개), 5월 11일(선릉공원 도시락 번개)로 이어졌다. 인터넷 언론 <아이뉴스24>는 폴리터(Politter)―정치인(politician)과 트위터(twitter)의 합성어로 트위터를 통한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정치인을 지칭―후보들에게 ‘트위터 에피소드’를 물었다. 노회찬은 종로보쌈빈대떡 집에서의 막걸리 번개 모임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답했다.
 
2010년 1월 17일 혜화역 막걸리 번개

 
“막걸리병이 나오는 식탁 사진을 올렸더니 남원에 사는 팔로워 한 분이 향토 막걸리(남원산 허브잎 막걸리) 한 박스를 보내주셨고 혼자 먹을 수 없어 트위터 팔로워들에게 함께 먹자고 막걸리 번개 제안했는데 70명 넘게 몰려들어 15분 만에 보내온 막걸리가 동이 나고 따로 막걸리를 주문해야 했다. 이날의 번개는 새벽 4시 3차까지 갔다고 한다. 저는 2차까지 하고 밤 12시가 넘어 방면되었다.”

정치인들의 트위터 소통에 대한 입장과 선관위의 트위터 규제에 대한 입장을 묻은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다.

“물을 두려워하면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다. 정치인의 일상활동 속에서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세대, 분야 사람들과 이웃, 침구, 선후배처럼 얘기 나누고 생각과 고민을 들을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다. 정치인에게 트위터 이상의 소통도구는 일찍이 없었다!!!”
 

2010년 1월 14일 ‘진보신당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노회찬은 “일자리 창출, 사회복지 확대, 지방선거 승리”를 내걸며 진보신당의 2010년 청사진을 밝혔다. 노회찬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신년기자회견을 트위터로 생중계하며 한국의 높은 이동통신 요금과 무선인터넷 정책에 대해 꼬집었다. 
 

2016년 7월 12일 노회찬은 트위터와 페리스코프 생방송을 통해 네티즌간 실시간 Q&A 자리를 마련한다.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에 직접 영상으로 답변하는 새로운 세계를 체험한 것이다.
  

“지난 10월 14일 제주도 Daum사무소 방문했을 때 약속한대로 진보신당 중앙당 상근자 전원에게 아이폰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선거비용을 위해 저축한 강의료, 출연료 모은 돈을 쓸 예정입니다. 모바일과 무선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위해 총 대신 아이폰입니다!” (노회찬 트위터) 


2009년 12월 진보신당 당대표 노회찬은 약속대로 사비 500여만원을 털어 중앙당 상근 당직자 23명에게 아이폰을 선물했다. 아이폰으로 트위터 등을 하면서 소통과 공감의 폭을 넓히라는 뜻이었다. 

“국민과 당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입니다. 새로운 소통의 도구와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지 제고나 유행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혁신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당 차원에서 ‘무선인터넷 미디어 정당’을 위한 충실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을 요청합니다.”

 
2009년 6월 아이폰OS 3.0과 함께 첫 선을 보인 애플사의‘아이폰3GS. 노회찬재단 소장

진보신당은 <생활진보 365> 운동의 일환으로 휴대폰 요금인하 등 정보기본권 확대 운동을 펼쳐왔다. 이동통신사의 독과점으로 인해 휴대폰 인터넷 접속시 사업자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비싼 데이터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내 현실부터 바꿔야 기본권으로서 인터넷 접속권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노회찬은 서울시장 출마선언에서 무상 인터넷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서울시민 정보기본권 실현’을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