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5

그가 남긴 ‘최초’들

영상다큐 의정보고서와 인터넷 의정간담회, 그리고 매일노동뉴스 


‘최초의 OOO.’ 한편으로 그것은 가슴 설레는 낱말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뜻이며, 또 삶의 긍정성을 배가하는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에서 충만한 자부심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자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도전과 결단의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최초’라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이라는 의미일 뿐, 그 자체로 어떤 힘이나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처음’이라는 시간에 덧칠해진 찰나의 한 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노회찬이 마음의 스승으로 존경한 고 신영복 선생이 <처음처럼>에 적은 글귀 중 일부다. 앞부분의 글귀는 이렇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사단법인 ‘더불어숲’ 홈페이지


‘산다는 것’,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이 삶의 여정에는, 삶에 대한 사색과 외경, 크고 작은 여러 꿈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정당 3선 국회의원. 17, 19, 20대 3선 임기 12년 가운데 숱한 우여곡절 끝에 7년여만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진보정치가. 노회찬의 삶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최초로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제작

 
‘2004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CD와 표지.신영복 선생이 새해를 맞아 노회찬에게 보낸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의 글귀를 달았다.

2005년 2월 21일 노회찬은 최초의 ‘2004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CD를 제작한다. 이 CD 케이스 표지는 신영복 선생이 새해를 맞아 노회찬에게 보낸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의 글귀를 달았다. 노회찬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순간부터 2004년 정기국회를 마칠 때까지의 의정활동 모두를 다큐멘터리로 영상화했다. 영상의정보고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4 국정감사, 피감기관 의정활동 평가 1위 ▲굴욕적 용산미군기지 협상 문제제기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하여 ▲민생과 인권을 위한 입법 활동 ▲당과 함께, 대중과 함께 등의 내용으로 내레이션을 곁들인 35분짜리 동영상으로 편집됐다. 또 부록에는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그의 발언을 모은 ‘노회찬 어록 모음’을 4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했으며 의회 진출 후 쓴 ‘난중일기’도 따로 모았다.

영상으로 만든 ‘신세대 맞춤형 의정보고서’는 사이버 영상매체에 익숙해져가는 젊은 세대의 기호와 종이 유인물 제작비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저비용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작기간은 한 달 정도 소요됐고 영상제작에 투입된 자료 테이프는 60분짜리 VHS 90여개와 6미리 테이프 30여개로 총 120여개의 자료 테이프가 활용됐다.

“한번 보고 버리기 쉬운 종이형태의 의정보고서는 8쪽 기준으로 2만부를 제작할 경우 제작비용만 약 1,300만원이 드는 데다 우편발송비 등까지 포함하면 2~3천만 원이 드는데 비해, CD형 보고서는 1만2천개 제작에 1천만 원 정도가 들지만 전자우편이나 홈페이지 등에 올릴 수 있고 보관성과 활용도가 높아 결국 총 비용은 적게 들고 홍보효과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의정보고서 제작에 앞서 노회찬은 “제대로 된 서민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지만 부족하고 미숙한 것이 더 많았던 나날이었다. 2005년도 더욱 치열하고 더욱 성숙한 활동을 약속드리는 마음으로 보고 드린다”고 말한다.

 
사진 출처=사단법인 ‘더불어숲’ 홈페이지

참고로 신영복 선생은 <처음처럼>(돌베개)에서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바람이 되어 새날을 연다.’ (花明故土 風移新天)
과거와 미래, 전통과 창조, 감성과 이성, 계승과 혁신.
이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노력이 이 땅을 지켜갈 것입니다.”

 

최초로 인터넷 의정간담회 개최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5년 3월 3일 노회찬은 ‘노회찬 네티즌을 만나다’를 주제로 오마이뉴스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네티즌과 함께하는 인터넷 의정간담회’를 최초로 개최하기도 한다. 인터넷 의정간담회는 기존 국회의원들의 지역별 의정간담회 형식을 타파하면서 저비용으로 수많은 네티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정치 전면에 떠오른 네티즌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의정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간담회는 유창선 박사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패널로는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김민영 국장,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김윤철 연구기획실장, 한림대 법대 4학년 이명주 학생이 패널로 참여했다.

“뜻깊은 간담회 마련해주신 <오마이뉴스> 측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평소에 방송토론 통해서 만날 때와 달리 오늘은 분장을 하지 않았다. 변장도 화장도 없는 맨 얼굴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아직까지 저나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하나의 실험으로 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희에게는 실험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실전이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C+ 정도밖에 안된다고 평가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많고 잘할 여지도 있다는 확신과 다짐이다. 올 한해 작년보다 더 노력해서 손 붙잡고 소주 한잔 마시고 싶은 정치, 운명을 서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 되도록 분발하겠다.”

- 유창선) 토론 출연 때 이 사람은 강적이다 생각되는 사람 있나?
- 노회찬) 많다. 유시민 의원이 아주 토론에 강해서 강적이고 한나라당에 홍준표 의원도 만만치 않다. 논리로 안 되면 힘으로 밀어붙인다. 또다른 강적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그 쪽에서도 내 말을 못 알아듣고. 한국말인데 외국어로 얘기하는 것 같은 의원도 있다. 진짜 강적이다.(웃음)
- 유창선) 실명공개는 안 되나?
- 노회찬) 끝나면 따로 말씀드리겠다.

인터넷 의정간담회의 주요 내용은 노회찬의 어록인 말말말 동영상 7분과 네티즌들의 질의와 방청객들의 질문이 30분간 이어졌다. 또 의원실에서 제작한 영상다큐 의정보고서가 7분간 방송되고 주요 패널들과 함께 50분간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와 정치현안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생중계 진행 중에 네티즌들과 방청석의 참가자들은 실시간 질문과 전화 연결로 그동안 노회찬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질문했다.

- 김민영) 어제(2일) 본회의에서는 110개 법안 처리로 신기록을 세웠고 며칠 전 법사위에서는 94개 법안을 처리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법사위원으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나.
- 노회찬)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듯 법률을 양산하다 보니 불량품이 나온다. 국회 통과한 법률 중에 위헌판결이 25개 나왔다. 자동차 회사에 리콜 25개 나오면 그 회사 망한다. 얼마 전에 법 개정안을 보고 “다른 법률이 함께 개정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고 다른 위원들도 타당하다고 해서 안건을 보류시켰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함께 개정되어야 할) 다른 법안이 이미 그날 개정이 되어있더라. 그걸 저도 다른 위원들도 몰랐다. 굉장히 부끄러운 날이었다.

- 이명주) 20대 입장에서 보면 시위의 경험도 적고 국가보안법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 미래의 유권자들을 어떻게 끌어모을 것인가.
- 노회찬) 국보법에 대해 실감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법안을) 가만 둘 순 없다. 다이옥신이 뭔지 모르는 국민들 많지만 다이옥신 없애는 데 돈 쓰지 않나. 청년들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청년들은 현재 교육제도의 피해자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건강한 대안들을 만들고 실현하는 속에서 지지를 받아가야 하지 않나.

- 유창선) 첼로연주와 과거 용접한 일 중 무엇이 더 행복하고 즐거운가.
- 노회찬) “둘 다 권하고 싶다. 용접은 쇠와 쇠를 녹여서 붙이는 거고, 첼로는 예술적 감성과 인간을 붙이는 것이라 둘 다 할 만 하다. 최근 용접을 한 번 해봤는데 운전기술과 같아서 몸에 배면 없어지지 않는다. 또 라디오에서 첼로연주를 들으면 남다른 감정을 갖고 듣는다. 길거리 공사판에서 용접 불빛이나 쇠가 타는 냄새를 맡으면 시골 굴뚝에서 고향 냄새를 맡듯이 좋은 과거가 떠오른다.”

 

국내/세계 최초의, 노동 전문 일간지 <매일노동뉴스> 발행


노회찬의 경우 노동운동가, 진보정치가로서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 시절인 1993년 5월 18일 노회찬은 국내/세계 최초의 노동 일간지이자 유일한 노동전문일간지인 <매일노동뉴스>를 창간해 2003년 9월까지 10년간 대표 및 발행인을 맡았다. 이전에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에 올린 것이 150여회 나온 뒤였다.

“1980년대 노동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제는 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들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운동을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배출하기 시작했고,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정보의 중요성이 높아만 가던 때였습니다. 노동 관련 정보를 관리·공유하고, 정책을 생산·유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노회찬의 예측은 적중했다. 노동 관련 정보라면 수준을 가리지 않고 모두 긁어모아 매일 실었다. ‘노동계 돌아가는 소식을 알려면 매일노동뉴스를 보라’고 하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1년도 채 안 돼 마니아가 생겨났다. 진념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마니아 중 한 명이었다. 진념은 노동부 장관 시절(1995년 8월∼1997년 8월), 출근 즉시 매일노동뉴스를 찾은 것으로 화제가 됐다.

“1980년대 노동운동 현장에서 헌신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세 속에서 노사관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만든 것이 매일노동뉴스입니다. 그 운동의 정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이 신뢰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5년 전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갈 것입니다.”

1995년 매일노동뉴스는 뉴스 큐레이션에 머물지 않고 직접 취재하며 현장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나갔다. 노동정보분류색인지 ‘주간 노동정보은행’을 만들고 국내 최대 노동전문 데이터베이스인 ‘노동정보은행’과 ‘노동정보검색서비스’도 운영했다. ARS 음성녹음 방식으로 현장의 소리를 담아내는 ‘노동뉴스 700-2468’을 도입하고 영문판 ‘Weekly Korea Labor News’로 한국 노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1996.4.26.)
 
사진=매일노동뉴스

당시 달라진 <매노>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1996년 4월 25일 ‘지령 1000호’ 기념식 장면이다.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조남홍 경총 부회장, 장을병 민주당 공동대표, 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 등이 기념식에 함께했다. 법외단체로 출범했던 민주노총을 포함해 노사정 대표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 기념식이 처음이어서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이 장면을 찍으려고 대거 몰려들어 취재 경쟁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2천호를 발간한 2000년 5월 24일 인터넷 매일노동뉴스(labornews.co.kr)와 인터넷 노동방송국(ltn.co.kr)을 선보였다. 창립부터 발행인과 대표를 맡았던 노회찬 전 대표는 2003년 9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2년 10월 31일 노회찬은 자신의 트위터에 2012년 10월 노회찬은 자신의 트위터에 매일노동뉴스 창립 20주년 기념식 및 지령 5천호 후원의 밤 사진을 올리며 “창간을 주도하고 당시부터 발행인을 10년간 맡아온 사람으로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진 속 ‘노동, 세상을 꽃피우는 힘’이라는 글귀는 신영복 선생이 2012년 매일노동뉴스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써 주신 휘호다.
 
사진=노회찬 트위터(2012.10.31.)

노회찬의 영결식이 열린 2018년 7월 28일 매일노동뉴스는 신문에 고인을 애도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그의 후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매일노동뉴스를 만든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던, ‘10년간 매일노동뉴스를 경영하며 마신 소주가 3천병, 맥주는 1만병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다’던 노회찬 매일노동뉴스 초대 대표. 당신의 노고, 의지, 꿈 잊지 않겠습니다. 매일노동뉴스 임직원 일동”
 

[컬렉션]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갈 것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