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션6

    [컬렉션]삼성X파일‘ 보도자료 및 판결문 전시

        2005년 8월 18일 ‘삼성X파일’ 보도자료 전문 (노회찬, “삼성, 명절 때마다 검사들에게 떡값 돌려”)   2005년 8월 18일 “(입장문) ‘나를 기소하려면 하라’” 2009년 2월 9일 1심 판결문: 2007고단2378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명예훼손 주문 1. 피고인을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처한다. 2.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1심 판결을 앞두고 피켓팅을 하는 진보신당 당원들과 함께: “떡값부터 단죄하라!” “도둑은 놔두고 신고한 사람만 처벌하나!” 2009년 12월 4일 2심(서울중앙지방법원 제8형사부) 판결문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에 의한 명예훼손, 통신비밀보호법위반은 각 무죄.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보도자료 배포에 의한 통신비밀보호법위반의 점에 관련 (공소를) 기각한다. 2심 판결을 마치고 기뻐하는 진보신당 당원들, 가족들, 변호인단과 함께: “삼성X파일 진실규명을 위해 나선 국민 모두의 승리입니다.” 2011년 5월 13일 파기환송심 판결문: 2009도14442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명예훼손 주문 원심판결 중 인터넷 홈페이지 게재에 의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부분을 파기하고, 이 부분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한다. 나머지 상고를 기각한다. 2011년 5월 13일 삼성 떡값검사 명단 폭로 대법원 판결 관련 노회찬 긴급기자회견 - 노회찬, “삼성 엑스파일 폭로 대법원 판결, 좌절 말고 함께 싸워 달라” : “아날로그 시대 판례로 디지털 시대 행위 재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   설명   2013년 2월 14일 최종 판결문: 선고 2011도15315 통신비밀보호법위반, 명예훼손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설명   설명   2013년 2월 14일 노회찬 기자회견문: ‘국회를 떠나며’ 2013년 2월 14일 노회찬 기자회견 장면  

  • 섹션5

    [컬렉션]우리는 앞으로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갈 것

        매일노동뉴스 지령 1000호 발간 기념사(1996.4.25.) 매일노동뉴스 지령 1500호 기념식 및 노회찬 기념사(1998.5.13.)   매일노동뉴스 지령 2000호 발간 기념식 노회찬 기념사(2000.5.24.)   고려대 노동대학원/매일경제신문사의 ‘1999 제1회 노동문화상’을 수상한 매일노동뉴스 (1999.11.11.) “귀 단체는 노동과 관련된 소식을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통해 국민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는데 남다른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노동현장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대안의 모색에 크게 공헌한 점을 인정하여 이 상을 통해 그 공로를 항구적으로 기리고자 합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의 감사패를 받은 매일노동뉴스 대표 노회찬 (2000.11.22.) “귀하께서는 매일노동뉴스를 이끌면서 지난 7월 금융노조 총파업 당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노동가치 실현을 위해 정론직필의 언론사명을 다하였기에 금융노동자의 애정을 모아 귀하와 귀사에 감사패를 드립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위원장 최문순)의 ‘특별상’을 수상한 매일노동뉴스 (2000.11.24.) “귀 사는 지난 1993년 5월 18일 창간한 이래 지금까지 7년여 동안 노동관련 전문 신문을 발간하면서, 기존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노동관련 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에 기여한 바가 크므로 그 공적을 기려 이 상을 드립니다.”   매일노동뉴스 임직원의 감사패를 받은 노회찬 (2003.12.19.)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기에 노동의 관점과 대안을 찾아 노동전문 일간지의 싹을 틔운지 10년, 이제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의 어엿한 나무로 성장하였습니다. 이 나무가 앞으로 노사정의 커다란 숲이 되기를 갈망하면서, 그동안 정성을 다하여 키워주신 은공을 기리어 이 감사패를 드립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의 ‘2018 민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한 고 노회찬 (2018.11.23.) “고인은 언론인으로서 ‘노동인권 존중을 통한 합리적 노사관계 실현’을 실천하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활동에 힘쓰셨습니다. 자유언론을 사랑했던 정치인 고 노회찬님의 뜻을 기려 이 패를 드립니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의 ‘2019 한국노동문화대상: 노동정책.복지부문’을 수상한 고 노회찬 (2019.12.6.) “故 노회찬 의원께서는 35년 동안 노동운동 및 정책전문가로서 헌신적 외길을 통해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정책의 발전에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17대, 19대, 20대 국회의원으로서 노동자 권익 향상과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 섹션4

    [컬렉션]촌철살인 노회찬의 말들

    2004년 1월 15일 MBC 100분토론 “3급수에다 2급수를 타면 그게 2급수가 됩니까. 조금 더 나은 3급수지? 국민들은 1급수를 원하고 있어요.”   2004년 3월 20일 KBS 심야토론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2004년 4월 3일 KBS 심야토론 “지금 당사 다 어디로 갔습니까? 천막으로 가고 무슨 공판장으로 가고, 지금 제일 가난한 민주노동당이 여의도에서 제일 버젓한 건물에 있어요. 말이 됩니까, 이게? 선거 때만 되면요, 갑자기 어디서 산천어, 열목어 다 나타납니다. 다 깨끗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을 해봤지만은 깨끗하다는 산천어, 열목어 선택해봤자, 그 정당이 3급수, 4급수가 들어간 정당에다가 산천어, 열목어 넣어 버리면요, 곧 물고기가 죽습니다. 아니면 그 물고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살아남는 거죠. 차떼기 야당, 탄핵 야당, 냉전야당, 지역주의 야당, 이런 야당들은 이제 좀 물러서야 됩니다. 이제 역할이 거의 다 끝났거든요! 지금 야당은 면허정지도 아닌 면허취소 상태입니다. 그중에는 장롱 면허도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1번이고, 민주당이 2번이고, 열린우리당이 3번입니다. 민주노동당은 12번입니다. 1번과 2번이 망친 나라를 12번이 살리겠습니다. 유권자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012년 3월 23일 SBS 시사토론 “새누리당 같은 경우 당명도 바꾸고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고, 결국 이것을 보면은 시험을 치는 데 1년 내내 놀던 사람이 시험을 친다고 하니까 전학 가버려서 다른 학교에 가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얘기하는 것 하고 비슷한 것 아니냐, 그래서 심판을 방해하는 것 아니냐, 교란하고 있는 게 아니냐 하고 걱정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2012년 3월 23일 SBS 시사토론 “얼마나 이명박 정부가 싫고 새누리당이 싫으면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닥치고 연대하라 이야기하겠습니까? 유사한 부분끼리 정책적 연대를 하는 것이 건전한 것이지 오히려 정책이 다르면서도 다른 이권을 위해 연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012년 3월 23일 SBS 시사토론3 “지금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표 체제인데, 친박 세력이 우리도 4년간 핍박당했다. 우리도 반MB세력이다 얘기하는 건 좀 곤란하고요. 양은이파가 ‘우리도 서방파한테 당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합니다.”    2012년 4월 6일 SBS 시사토론  “투표일을 닷새 앞둔 현재 여론조사만 보면 혼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 다만 이러한 민심과 표로 드러나는 표심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민심이 표심으로 덜 반영되게 하기 위해 교란작업을 하는 것이 새누리당이 하는 일이고, 민심이 제대로 표심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야당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2012년 4월 6일 SBS 시사토론  “도둑질하다 잡혔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지, ‘세상에 도둑이 나만 있냐’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입니까.”   2012년 4월 6일 SBS 시사토론​​​​  “한국과 일본이 평소 사이가 안 좋아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함께 연대해야죠! 야권연대가 그런 겁니다.”   2012년 4월 7일 KBS 심야토론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가 신고한 재산이 186억이었는데 건강보험료를 2만원밖에 안낸 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소유한 빌딩의 관리업체에 자기를 등록시켜서 급여를 한 달에 133만원 받는다고 거짓 신고해서 보험료를 적게 냈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공식적으로는 월급 안 받고 있기 때문에 주식배당 수익만 하더라도 1년에 1300억 정도 되지만, 월급이 없기 때문에 28만원 이하의 월급쟁이와 같은 보험료를 내게 됩니다. 한 달에 건강보험료를  8120원 내고 있습니다.”   2012년 4월 7일 KBS 심야토론  “무상의료 실시하면 남용된다는 점을 너무 강조하는데, 산소가 무상이라고 해서 숨가쁘게 호흡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파파이스 진박 될려면 이정도는  “가장 즐겨보는 애독서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인 ‘세상을 바꾸는 약속’입니다. … ‘진박’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   2017년 6월 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자유한국당에게 재벌은 오랜 고객 아닙니까? 그리고 주요 고객 아닙니까? 그리고 또 두 집단이 하나는 경제권력이고 하나는 정치권력인데 오랫동안 협치를 해온 것 아니에요. 이 협치를 우리가 학술용어로 정경유착이라고 부르는데 그리고 이 협치의 가장 잘못된 사건이 바로 박근혜 국정농단 아닙니까? 자유한국당(당시는 물론 새누리당)이라는 정치권력과 그리고 전경련이라는 재벌, 그들의 잘못된 만남,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하다가 생긴 사고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자유한국당이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자유한국당의 오랜 고객이자 내연의 관계인 전경련, 그 전경련이 국민들에 의해서 해산요구를 당하고 있거든요. 그런 마당에, 오랜 고객과의 관계를 끊어야 됩니다. 이 관계를 끊지 않는다면 자유한국당도 전경련과 함께 해산당할 것이에요.”    ‘김어준의 뉴스공장’ 에프킬라, 정의당 카드뉴스  “동네 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 우범자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모기가 싫어한다고 에프킬라를 안 삽니까?”    2017년 9월 2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현장  - 김어준 : 이런 얘기도 있어요. “적폐청산은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켜서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이제 이게 속내가 들어있는 거죠. 더 이상 옛날 얘기를 꺼내지 말라고 하는 얘기인데.   - 노회찬 : 아니, 깡패를 갖다가 도둑질한 사람을 잡으니까, 그래서 몇 시에 어느 집에 가서 뭘 훔쳤냐고 조사를 하니까 사생활 침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아직도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범죄 행위에 대해서 또 그것도 간단한 범죄 행위가 아니라 국가권력을 갖다가 사적으로 동원한 그런 심각한 국기문란의 수준의 범죄 행위를 수사하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적폐다. 국민을 분열시킨다.” 말이 안 되는 거죠. 왜, 도둑놈 잡아넣었더니 왜 가족하고 생이별을 시키냐고 항의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그럼 생이별을 시켜야지, 사이별을 시킵니까?   2017년 11월 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조업 중에 북한으로 나포됐다가 풀려난 흥진호 선원들 관련,) “돌아올 때 온갖 카메라들이 달라붙으니까 마스크를 쓰고 선원들 10명이 왔는데, 그런데 그걸 가지고 계속해서 ‘저 사람들이 왜 마스크를 썼냐.’ 이거예요. ‘저게 남한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북한 요원들이라는 거야. ‘광주사태 때도 북한 게릴라 부대들이 들어왔는데’, 이런 식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국회에서 장관에게 물어본 겁니다. 아니, 그러면 집단으로 와서 마스크 쓰고 나타나면 다 간첩이냐. 자기들도 집단으로 마스크 썼잖아요.”   2018년 3월 14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겨우내 묵은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대청소하는 그런 날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이 사람(MB)을 이 자리(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외쳤던 국민들…” MB측의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보복당한 건 이 전 대통령이 아니고 국민입니다.”     저공비행, 원자력 마피아 편 - 노회찬: 이명박 대통령이 핵발전소를 수출한다고 기염을 토하면서 안전성을 100년 동안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100년을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장한다는 건가.  - 이헌석: 체르노빌이 그 꼴이다. 사고가 난지 26년 됐는데, 관을 씌워놨다. 그게 수명이 30년이다. 그런데 지금 금이 가고 있다. 그래서 1조5000억을 모아서 또 씌우려고 하고 있다. 공사를 하려는데 돈이 없다. 또 씌워봤자 100년 간다. 얼마동안 이 짓을 해야 하느냐.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800년은 해야 한다. 그럼 100년 뒤에 우크라이나 후손들은 또 돈 모아서 100년 전 선조들이 물려준 발전소 돔 씌우기 위해서 돈 받으려 다녀야 한다.  - 노회찬: 800년이면 (지금 기준으로) 징기스칸 살았을 때 이야기인데, 우리 고려 중기 때 원나라 쳐들어오던 때다. 그때 일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 거나 마찬가지다.  - 이헌석: 원나라 때 (당시 고려가) 억압을 받았는데 지금 우리가 그 영향 때문에 아직 돈 내놔라 하는 그런 거다.   2012년 3월 7일 유시민.노회찬의 저공비행 8편  “우리가 재벌마피아 그다음에 핵발전 마피아도 했죠. 이제 오늘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할 수 있는 핵발전소의 폐해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닌 법조 마피아를 다루는….” “과거에 군사독재 시절에는 안기부(중앙정보부) 때로는 보안사가 설쳤지 않았습니까. 근데 문민화되면서 민주화되면서 안기부나 보안사가 부당하게 민생이나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사실 근절됐다 말이죠. 그렇게 되면서 오히려 검찰이 때로는 정권이 많이 의존하기도 하고. 근데 검찰이 항상 권력의 시녀만은 아니에요. 필요에 따라서는 시녀 역할을 자청하기도 하지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 자기이익을 위해서는 권력이 약하거나 약점이 있을 때는 권력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대는, 그렇게 하면서 결국에는 자기중심을 키워나가는.”   2014년 5월 22일 정치다방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지금 대통령이 관계자들에게 할 얘기가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하고 있는 얘기다. 대통령이 ‘대한민국호’의 선장인데, 선장이 아니라 마치 선주 같다. 결국에는 밀실에서 (박 대통령) 혼자 대안을 다 만들려면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사십시오.”   2014년 6월 10일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 정치다방 3편  - 진중권: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의 성적표가 대단하네요. … 진짜 세요. 옛날에 차떼기 하고도 살아남았고, 대통령 탄핵심판을 하고도 살아남았고, 국민들을 몇백 명씩 죽게 만드는 이런 무능을 저지르고도 끄떡없죠. 대한민국에서 ‘세’누리당, 진짜 세다. - 노회찬: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도 없다는 겁니다. - 유시민: 그런데 이 꽃은 365일 붉은 것 같아요. - 노회찬: 조화라서 그래요.  - 유시민: 왜 유권자들이, 국민들이 진보정당을 안 알아줄까? 제가 가볍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 편이라는 느낌보다는 약간 무서운 게 있거든요. … 막스 베버, 존 스튜어트 밀도 사회주의자들에게 그런 말을 했는데, 과격함이 미덕으로 통하는 정치집단이 과연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 노회찬: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이른바 진보세력 내지 좌파의 생래적, 체질적인 요소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비대중적이고 과격한 구호를 외치거나, 대중의 정서를 무시하는 게 좌파의 전통인가? 그렇지 않죠. 성공한 좌파들은 누구보다 대중적이어서 성공했습니다. 기가 막히게 유연해서 성공했죠. 지금의 모습이 좌파의 본질은 아니라는 겁니다. - 진중권: 저는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정치는 이해관계의 조정이기도 하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죠. 그런데 어떤 절대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의 실현이라는 측면만 부각되면, 생각이 조금만 다른 사람이더라도 동료가 아니라 적이 됩니다.   2014년 6월 18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조희연  “사람의 운명이 평생에 걸친 동안의 자기 노력에 따라 달라지고 결정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열아홉 살에 운명이 결정되는 나라죠. 열아홉 살 이후로는 학교 졸업장 하나로 행세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학교 졸업장 때문에 노력해도 안 되고. 그러니까 그 자격을 따기 위해서 온 집안이 아이에게 물적 투자를 하는 거죠.” “‘서울대 폐지론’을 대학 하향평준화라고 비난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서울대를 70개로 늘리는 방안이에요. 재정 지원 등을 통해 지방의 어려운 학교에 훌륭한 교수들이 더 오게끔 해서 교육의 질을 높이는 거죠. 어차피 사립학교는 손을 대기가 쉽지 않으니까, 국공립대학부터 해보자는 거죠.”   2014년 7월 1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6편 오건호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에게 만들어준 공감대와 교훈이 ‘돈보다 생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의료영리화의 구호는 ‘생명보다 돈’이에요.” “복지는 일종의 2차 분배잖아요. 그러면 1차 분배에서 개선할 점은 개선해서 복지 수요 자체를 줄여야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1차 분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해고해서 실업자로 만든 다음에, 실업수당을 2배로 주겠다, 기초연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조치는 1차 분배의 잘못을 2차 분배로 메꾸는 거죠. 이렇게 되면 2차 분배의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도 1차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제일 나쁜 의사는 병 주고 약 주는 의사예요. 병 자체를 줄인 후에 필요한 환자들에게 약을 공짜로 주든 2배로 주든 해야죠. 한 손으로는 고용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다른 한 손으로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니까 이 약속은 지켜질 수 없어요.” “저는 여기서 교훈을 하나 얻었어요. 앞으로 여야 어느 당이든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할 거예요. 그래서 어느 게 진짜이고 가짜인지 정확하게 감별해야 한다는 거죠. 일단 더 많은 복지만 약속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좋은 노동, 제대로 된 고용과 함께 복지를 이야기할 때 건강한 해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2014년 7월 18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9편 숭실대  (새정치연합의 공천파동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음향문제로 삑 소리가 나자 노회찬,) “미성년자가 들으면 안 될 내용이라 삐 처리를 했다, 우리나라에 19금 정당들이 몇 개 있다.”     2014년 10월 20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21편 박경신  “통신비밀보호법과 관련한 감청, 압수수색은 테러범, 인질범, 간첩 등 아주 긴급한 사태에 예외적으로 적용돼야 합니다. … 쥐약은 쥐를 잡을 때만 써야 됩니다. 쥐약을 아기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 먹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쥐약 자체를 판매 금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쥐만 신나는 거죠.”   2014년 2월 9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37편 전중환 “결국 투표는 ‘개인적 이익’의 문제인 것 같아요. 레닌도 똑같은 지적을 했는데, 너무 못살 경우에는 혁명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미래를 위한 꿈을 키울 여지도 없는, 하루하루 생존 그 자체가 급급한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이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9시 뉴스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죠. 정치인이라고 해봐야 노회찬 같은 사람은 아예 모르고 박근혜 대통령 정도만 아는 거죠. … 대부분은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우선 따집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찍는 건 당연한 거예요.  한국의 고도 성장기 대부분은 보수 정권이 집권했을 때죠. 우리는 개혁적인 세력의 집권을 10년밖에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보가 밥 먹여준다는 인식이 별로 없습니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물로 이 땅의 많은 노동자들이 일군 성과죠. 하지만 그들을 산업역군으로 불러주고, 자신들의 체제로 끌어들였던 이들은 보수적인 세력들, 즉 지금의 새누리당이라는 겁니다. 반면 진보진영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신들이 더 능력 있다는 믿음을 못 주고 있는 거죠.” “어떤 한국 여성이 영국 남자와 결혼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남자가 보수당 당원이었어요. 영국은 세금이 세잖아요. 그래서 한국인 아내가 그걸 불평했더니, 남편이 ‘우리는 많이 버니까 많이 내야 나중에 우리 아이가 길 가다가 칼을 안 맞는다’라고 했대요. 자기들을 위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세금을 내는 거고,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게 제대로 된 보수의 태도가 아닐까요.”   2015년 1월 12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33편 한귀영 “어릴 때 도저히 납득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말씀이 뭐였냐면 ‘그래도 일제 강점기가 나았다’였습니다. 그 말을 했던 어른들이 살던 ‘현재’는 박정희 시대였죠. 그런 걸 되짚어보면, 어떤 시대가 실제로 나았다기보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현재로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통은 기억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거든요. 그리고 오늘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좋은 방법은 과거에 고통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현재 60대가 정말 행복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현실이 고달픔에도 불구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의 긍정성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진보정당 관련 대화 한 토막 소개) - 한귀영: 저는 한국 사회에 정치적 대안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언제나 10~15%는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안 나오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죠. 결코 적은 수가 아니고, 결코 힘이 약한 지지층이 아닙니다. - 유시민: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현 야권의 정치 리더십 혁신이네요.  - 한귀영: 그걸 하려면 야권, 진보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정치적인 열정이 넘쳐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가라앉아 있습니다. - 유시민: 미래 전망은 어떻게든 밝게 해야죠. 어두우면 안 돼. - 한귀영: 그래도 밭이 좋지 않습니까? - 유시민: 농부가 제대로 된 종자를 가져와서 제때 뿌리고, 물을 줘야 하는데…. - 노회찬: 예, 종자를 개량해야죠. 쭉정이도 뽑아서 버려야죠. … 국민은 준비됐다. 여기까지는 확인된 거죠. 밭은 점점 좋아지고 있고, 국민들은 이미 준비돼 있으니 국민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맙시다. 분발하겠습니다.   

  • 섹션6

    '우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삼성X파일

    "의원님의 홈페이지를 ‘2005 국회의원 우수 홈페이지’로 뽑았습니다.” 2005년 4월 8일 월간중앙과 사이버문화연구소는 민주노동당 17대 국회의원 노회찬의 홈페이지를 ‘2005 국회의원 우수 홈페이지’로 선정했다. ‘2005 국회의원 온라인 의정활동 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의원은 노회찬을 포함해 원희룡, 임종석, 이재오 등 모두 10명이었다.  3년째인 선정작업은 2005년에 들어와 의원 개인의 ‘미니홈피’와 ‘블로그’까지 평가 항목에 포함하는 온라인 의정활동 평가로 지평을 넓혔고, 그에 따라 타이틀도 ‘국회의원 온라인 의정활동 평가’로 고쳤다. 그럼에도 온라인 의정활동이 주로 의원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루어져 ‘국회의원 우수 홈페이지 선정패 수여식’이라는 행사 이름은 유지하기로 했다.   의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삼성X파일 떡값검사 실명 보도자료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김상희 법무차관에게 삼성에게 ‘떡값’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따져 묻는 노회찬. ⓒ 오마이뉴스 이종호 몇 달 뒤인 2005년 8월 18일 노회찬은 국회 법사위에서 ‘삼성 X파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삼성으로부터 ‘떡값’(뇌물)을 받은 전.현직 고위 떡값검사 7명의 명단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최경원, 김두희, 김상희, 김진환, 안강민, 홍석조, 한부환 등 7명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아온 것으로 밝혀진 ‘떡값 검사’(‘떡검’)의 이름이었다. 노회찬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법사위 회의장에서 노회찬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의 대화록'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 홍(석현):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 - 이(학수): 할 만한 데는 해야죠. - 홍: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K1들도. 검사 안하시는 데는 합니까? - 이: 아마 중복되는 사람들도 있을 거에요. (…) - 홍: 김두희는 2천 정도. 김상희는 거기 들어있으면 5백 정도 주시면은 같이 만나거든요... 석조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그 다음 생각한 게 최경원. - 이: 들어 있어요.   실명 공개 직후 “용기 있는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이다”, “대통령으로 밀어드리겠다”라는 격려 글이 쇄도하면서 의원실의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고, 후원자 급증은 물론 ‘검찰과 삼성을 혼내 달라’며 시루떡을 전달받는 등 지지와 성원이 이어졌다. 네티즌들의 반응 몇 개를 골라 소개한다. -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 노회찬 님이 아니고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의혹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어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의 위협을 무릅쓰고 떡검사들 실명 공개하신 거 자랑스럽습니다.  - 여기 저기 눈치 보지 마시고 앞만 보고 가십시오. 국민만 믿고 전진하십시오. 당신의 선택 잘하신 겁니다. X파일은 국가기밀도 아니고 사생활은 침해한 것도 아닌 (것으로) 국민 모두가 알고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절대 재발하지 않도록 두 눈 똑바로 뜨고 감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 저 고딩인데 다음 선거에서는 꼭 한 표… - 대한민국에는 이런 분이 계셔야 합니다.    익명의 시민이 격려의 엽서와 함께 노회찬 의원 앞으로 보낸 시루떡 택배로 의원실에 도착한 박스에 시루떡과 함께 담긴 메모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노회찬 의원님, 비리와 의혹의 X파일을 국민에게 열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시루떡 드시고 힘내셔서 삼성과 비리검찰을 꼭 심판해 주세요. - 8월 19일 의원님을 지지하는 사람” 시루떡은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떡으로, 팥을 대량으로 써서 만들며 길한 일이 있을 때, 복을 기원할 때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해 보도자료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 ‘삼성X파일’을 최초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는 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삼성이 금력으로 대선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검찰 간부들을 길들이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천신만고 끝에 입수했습니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저는 이 테이프를 ‘삼성X파일’이라 명명하고,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직감했습니다. MBC 사장, 보도국장을 비롯해 보도를 반대하는 수뇌부를 상대로 10개월을 투쟁한 끝에 보도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뇌물을 받은 검찰간부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정치권이 모두 삼성 눈치를 보고 있던 그 시절,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습니다.” 2007년 11월 6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최고 경영진을 불법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행위 등으로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히면서 질타했다.  “또 검찰에 묻는다. 그것도 전국의 1500명 검사에게 말이다. 늘 수뇌부에 항의하던 소신 있는 검사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검찰 내부에는 국민 검사는 없고 삼성장학생만 있는가.” 2005년 이래 2013년까지 다수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은 계속됐다. 그러나 2심의 무죄 판결을 제외하면 법원의 판결은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정서와는 완전히 어긋났다.  국민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 ‘2005년 국회의원 우수 홈페이지’를 통해 삼성X파일 ‘떡값 검사’ 실명을 담은 보도자료를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법복 권력(검찰+사법부)의 시대착오적 궤변으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삼성X파일 떡값검사 공개와 관련한 기소혐의 그리고 1, 2, 3심 판결 결과 얼토당토않은 법원의 판결문의 핵심 요지를 기록으로 다시 밝힌다.  - “노회찬이 검찰의 수사를 촉구할 목적으로 보도자료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고는 하나 이미 언론매체를 통해 그 전모가 공개된 데다가 국회의원이라는 피고인의 지위에 기해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의 촉구 등을 통해 그 취지를 전달함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굳이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불법녹음된 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관련 당사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2011.5.13. 대법원 2부 판결문, 주심 양창수 대법관) -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국회 외에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기자나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2011.10.28. 서울중앙지법 파기환송심 판결문, 재판장 양현주 판사) - “‘X파일’에 실린 검사들의 이름을 보도자료를 통해 기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면책 특권에 해당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알게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통신비밀보호법에 근거하여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형을 선고한다.” (2013.2.14. 대법원 3부 판결문, 주심 박보영 대법관) 결국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하루 전날인 2월 13일, 2005년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던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박근혜 정부의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당시 ‘떡값 검사’로 이름을 올린 검찰 고위인사들 역시 영전하거나 대기업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등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2013년 2월 14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던 날, 노회찬은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국내 최대의 재벌회장이 대선후보에게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건넨 사건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해괴망칙한 판단을 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민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적용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착오적 궤변으로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정의가 있는가? 양심이 있는가?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 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 권력의 비리에 맞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다음날 논평을 통해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것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검찰을 돈으로 관리하려고 모의하는 대화내용이었으며, 그 대화에 거론된 검사들의 명단이었다”며 “공개한 내용에 보호돼야 할 사생활은 전혀 없으며, 오로지 재벌이 돈으로 검찰을 관리하려는 내용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의원으로서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고자 했던 노 의원의 행위는 모든 국회의원에게 권장돼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공적 영역에서조차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닌 권력집단의 손을 들어 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다”며 규탄했다. ‘해괴망칙’하고 ‘시대착오적’인 궤변인 유죄판결 판단의 논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회찬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 이들 법관들에게 묻는다면 어떤 답이 돌아올까? 여전히 당시 판결이 타당했다고 말할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 103조 규정에 따른 것으로, 하늘을 우러러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가?”  오랫동안 노회찬이 던진 질문이다.   [컬렉션]삼성X파일‘ 보도자료 및 판결문 전시 보기  

  • 섹션5

    그가 남긴 ‘최초’들

    영상다큐 의정보고서와 인터넷 의정간담회, 그리고 매일노동뉴스  ‘최초의 OOO.’ 한편으로 그것은 가슴 설레는 낱말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뜻이며, 또 삶의 긍정성을 배가하는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의 생활에서 충만한 자부심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자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도전과 결단의 지렛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최초’라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이라는 의미일 뿐, 그 자체로 어떤 힘이나 영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처음’이라는 시간에 덧칠해진 찰나의 한 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노회찬이 마음의 스승으로 존경한 고 신영복 선생이 에 적은 글귀 중 일부다. 앞부분의 글귀는 이렇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사단법인 ‘더불어숲’ 홈페이지 ‘산다는 것’, 수많은 처음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이 삶의 여정에는, 삶에 대한 사색과 외경, 크고 작은 여러 꿈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정당 3선 국회의원. 17, 19, 20대 3선 임기 12년 가운데 숱한 우여곡절 끝에 7년여만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진보정치가. 노회찬의 삶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최초로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제작   ‘2004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CD와 표지.신영복 선생이 새해를 맞아 노회찬에게 보낸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의 글귀를 달았다. 2005년 2월 21일 노회찬은 최초의 ‘2004 영상다큐 의정보고서’ CD를 제작한다. 이 CD 케이스 표지는 신영복 선생이 새해를 맞아 노회찬에게 보낸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의 글귀를 달았다. 노회찬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순간부터 2004년 정기국회를 마칠 때까지의 의정활동 모두를 다큐멘터리로 영상화했다. 영상의정보고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4 국정감사, 피감기관 의정활동 평가 1위 ▲굴욕적 용산미군기지 협상 문제제기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하여 ▲민생과 인권을 위한 입법 활동 ▲당과 함께, 대중과 함께 등의 내용으로 내레이션을 곁들인 35분짜리 동영상으로 편집됐다. 또 부록에는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그의 발언을 모은 ‘노회찬 어록 모음’을 4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했으며 의회 진출 후 쓴 ‘난중일기’도 따로 모았다. 영상으로 만든 ‘신세대 맞춤형 의정보고서’는 사이버 영상매체에 익숙해져가는 젊은 세대의 기호와 종이 유인물 제작비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저비용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작기간은 한 달 정도 소요됐고 영상제작에 투입된 자료 테이프는 60분짜리 VHS 90여개와 6미리 테이프 30여개로 총 120여개의 자료 테이프가 활용됐다. “한번 보고 버리기 쉬운 종이형태의 의정보고서는 8쪽 기준으로 2만부를 제작할 경우 제작비용만 약 1,300만원이 드는 데다 우편발송비 등까지 포함하면 2~3천만 원이 드는데 비해, CD형 보고서는 1만2천개 제작에 1천만 원 정도가 들지만 전자우편이나 홈페이지 등에 올릴 수 있고 보관성과 활용도가 높아 결국 총 비용은 적게 들고 홍보효과는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의정보고서 제작에 앞서 노회찬은 “제대로 된 서민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왔지만 부족하고 미숙한 것이 더 많았던 나날이었다. 2005년도 더욱 치열하고 더욱 성숙한 활동을 약속드리는 마음으로 보고 드린다”고 말한다.   사진 출처=사단법인 ‘더불어숲’ 홈페이지 참고로 신영복 선생은 (돌베개)에서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바람이 되어 새날을 연다.’ (花明故土 風移新天) 과거와 미래, 전통과 창조, 감성과 이성, 계승과 혁신. 이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노력이 이 땅을 지켜갈 것입니다.”   최초로 인터넷 의정간담회 개최   ⓒ 오마이뉴스 남소연 2005년 3월 3일 노회찬은 ‘노회찬 네티즌을 만나다’를 주제로 오마이뉴스 TV를 통해 생방송으로 ‘네티즌과 함께하는 인터넷 의정간담회’를 최초로 개최하기도 한다. 인터넷 의정간담회는 기존 국회의원들의 지역별 의정간담회 형식을 타파하면서 저비용으로 수많은 네티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정치 전면에 떠오른 네티즌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가는 의정보고라고 할 수 있다. 간담회는 유창선 박사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패널로는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김민영 국장,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의 김윤철 연구기획실장, 한림대 법대 4학년 이명주 학생이 패널로 참여했다. “뜻깊은 간담회 마련해주신 측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평소에 방송토론 통해서 만날 때와 달리 오늘은 분장을 하지 않았다. 변장도 화장도 없는 맨 얼굴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아직까지 저나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하나의 실험으로 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희에게는 실험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실전이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C+ 정도밖에 안된다고 평가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많고 잘할 여지도 있다는 확신과 다짐이다. 올 한해 작년보다 더 노력해서 손 붙잡고 소주 한잔 마시고 싶은 정치, 운명을 서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 되도록 분발하겠다.” - 유창선) 토론 출연 때 이 사람은 강적이다 생각되는 사람 있나? - 노회찬) 많다. 유시민 의원이 아주 토론에 강해서 강적이고 한나라당에 홍준표 의원도 만만치 않다. 논리로 안 되면 힘으로 밀어붙인다. 또다른 강적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그 쪽에서도 내 말을 못 알아듣고. 한국말인데 외국어로 얘기하는 것 같은 의원도 있다. 진짜 강적이다.(웃음) - 유창선) 실명공개는 안 되나? - 노회찬) 끝나면 따로 말씀드리겠다. 인터넷 의정간담회의 주요 내용은 노회찬의 어록인 말말말 동영상 7분과 네티즌들의 질의와 방청객들의 질문이 30분간 이어졌다. 또 의원실에서 제작한 영상다큐 의정보고서가 7분간 방송되고 주요 패널들과 함께 50분간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와 정치현안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생중계 진행 중에 네티즌들과 방청석의 참가자들은 실시간 질문과 전화 연결로 그동안 노회찬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와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질문했다. - 김민영) 어제(2일) 본회의에서는 110개 법안 처리로 신기록을 세웠고 며칠 전 법사위에서는 94개 법안을 처리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법사위원으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나. - 노회찬)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듯 법률을 양산하다 보니 불량품이 나온다. 국회 통과한 법률 중에 위헌판결이 25개 나왔다. 자동차 회사에 리콜 25개 나오면 그 회사 망한다. 얼마 전에 법 개정안을 보고 “다른 법률이 함께 개정해야 한다”고 문제제기를 했고 다른 위원들도 타당하다고 해서 안건을 보류시켰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함께 개정되어야 할) 다른 법안이 이미 그날 개정이 되어있더라. 그걸 저도 다른 위원들도 몰랐다. 굉장히 부끄러운 날이었다. - 이명주) 20대 입장에서 보면 시위의 경험도 적고 국가보안법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 미래의 유권자들을 어떻게 끌어모을 것인가. - 노회찬) 국보법에 대해 실감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법안을) 가만 둘 순 없다. 다이옥신이 뭔지 모르는 국민들 많지만 다이옥신 없애는 데 돈 쓰지 않나. 청년들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 청년들은 현재 교육제도의 피해자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건강한 대안들을 만들고 실현하는 속에서 지지를 받아가야 하지 않나. - 유창선) 첼로연주와 과거 용접한 일 중 무엇이 더 행복하고 즐거운가. - 노회찬) “둘 다 권하고 싶다. 용접은 쇠와 쇠를 녹여서 붙이는 거고, 첼로는 예술적 감성과 인간을 붙이는 것이라 둘 다 할 만 하다. 최근 용접을 한 번 해봤는데 운전기술과 같아서 몸에 배면 없어지지 않는다. 또 라디오에서 첼로연주를 들으면 남다른 감정을 갖고 듣는다. 길거리 공사판에서 용접 불빛이나 쇠가 타는 냄새를 맡으면 시골 굴뚝에서 고향 냄새를 맡듯이 좋은 과거가 떠오른다.”   국내/세계 최초의, 노동 전문 일간지 발행 노회찬의 경우 노동운동가, 진보정치가로서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진정추(진보정당추진위원회) 시절인 1993년 5월 18일 노회찬은 국내/세계 최초의 노동 일간지이자 유일한 노동전문일간지인 를 창간해 2003년 9월까지 10년간 대표 및 발행인을 맡았다. 이전에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에 올린 것이 150여회 나온 뒤였다. “1980년대 노동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이제는 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들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운동을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배출하기 시작했고,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정보의 중요성이 높아만 가던 때였습니다. 노동 관련 정보를 관리·공유하고, 정책을 생산·유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노회찬의 예측은 적중했다. 노동 관련 정보라면 수준을 가리지 않고 모두 긁어모아 매일 실었다. ‘노동계 돌아가는 소식을 알려면 매일노동뉴스를 보라’고 하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1년도 채 안 돼 마니아가 생겨났다. 진념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마니아 중 한 명이었다. 진념은 노동부 장관 시절(1995년 8월∼1997년 8월), 출근 즉시 매일노동뉴스를 찾은 것으로 화제가 됐다. “1980년대 노동운동 현장에서 헌신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세 속에서 노사관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만든 것이 매일노동뉴스입니다. 그 운동의 정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이 신뢰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5년 전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갈 것입니다.” 1995년 매일노동뉴스는 뉴스 큐레이션에 머물지 않고 직접 취재하며 현장성과 전문성을 강화해 나갔다. 노동정보분류색인지 ‘주간 노동정보은행’을 만들고 국내 최대 노동전문 데이터베이스인 ‘노동정보은행’과 ‘노동정보검색서비스’도 운영했다. ARS 음성녹음 방식으로 현장의 소리를 담아내는 ‘노동뉴스 700-2468’을 도입하고 영문판 ‘Weekly Korea Labor News’로 한국 노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동아일보 기사 갈무리(1996.4.26.)   사진=매일노동뉴스 당시 달라진 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1996년 4월 25일 ‘지령 1000호’ 기념식 장면이다.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조남홍 경총 부회장, 장을병 민주당 공동대표, 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 등이 기념식에 함께했다. 법외단체로 출범했던 민주노총을 포함해 노사정 대표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당시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 기념식이 처음이어서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이 장면을 찍으려고 대거 몰려들어 취재 경쟁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2천호를 발간한 2000년 5월 24일 인터넷 매일노동뉴스(labornews.co.kr)와 인터넷 노동방송국(ltn.co.kr)을 선보였다. 창립부터 발행인과 대표를 맡았던 노회찬 전 대표는 2003년 9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2년 10월 31일 노회찬은 자신의 트위터에 2012년 10월 노회찬은 자신의 트위터에 매일노동뉴스 창립 20주년 기념식 및 지령 5천호 후원의 밤 사진을 올리며 “창간을 주도하고 당시부터 발행인을 10년간 맡아온 사람으로서 감개가 무량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진 속 ‘노동, 세상을 꽃피우는 힘’이라는 글귀는 신영복 선생이 2012년 매일노동뉴스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써 주신 휘호다.   사진=노회찬 트위터(2012.10.31.) 노회찬의 영결식이 열린 2018년 7월 28일 매일노동뉴스는 신문에 고인을 애도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그의 후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매일노동뉴스를 만든 것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던, ‘10년간 매일노동뉴스를 경영하며 마신 소주가 3천병, 맥주는 1만병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다’던 노회찬 매일노동뉴스 초대 대표. 당신의 노고, 의지, 꿈 잊지 않겠습니다. 매일노동뉴스 임직원 일동”   [컬렉션] 우리는 앞으로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갈 것 보기  

  • 섹션4

    변화를 꿈꾸게 한 뉴미디어 스타

    촌철살인, ‘노회찬 어록’과 사이다 발언 “2004년 17대 국회에서 제일 주목받는 ‘스타’를 꼽는다면 누구일까? 아마도 4.15 총선이 끝난 4월16일 새벽 3시까지 우리를 잠 못 들게 한 사람. 10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네스 기록을 갖고 싶어했던 김종필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제로섬 게임을 펼치며 TV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든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노회찬 당선자일 것이다.  사실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총선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TV토론에 나와 기존 정치인 누구보다 속시원한 발언으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이번 총선 최대의 ‘미디어 스타’로 떠올랐다.” (참여연대, , 2004년 6월호) 우리나라 대선에 법정 TV토론 방식이 도입된 건 1997년 15대 대선부터다. 97년 이전엔 선거운동 방식이 대규모 군중집회 중심이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중앙선거대책본부장으로 선거를 총지휘한 노회찬. 선거 국면에서 (진보)정당을 알리는 데 TV토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포착한 그는 “TV토론 참여에 큰 공을 들였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정치 불신이 대단히 높은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무얼 바라는지 또 국민들의 어떤 육성, 가공된 인식 발언이 아니라 국민들의 육성을 그대로 좀 전달하기에는 저희들의 활동이 아무래도 일반 서민대중과 밀착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저희들이 기본적인 강점을 안고 있지 않았는가 판단을 했습니다. 특히 TV토론이 국민여론과 선거에 표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저희들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2002년 대통령선거 때 TV토론 나가면서부터 실제로 권영길 후보가 국민여러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여론을 바꾸어내고 또 인지도를 높여내는가를 저희들이 실감을 했기 때문에 비록 저희들에게 많은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은 TV토론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와의 인터뷰, 2009.5.13.).   노회찬 어록 세상에 나오다  : KBS 심야토론과 MBC 100분토론 정치인 노회찬의 이름 석 자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였다. 그 시작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사무총장으로 출연한 TV토론을 통해서였다. 2004년 1년간 노회찬이 방송3사의 생방송 토론회에 나간 횟수는 총 19회로 KBS 심야토론 7회, MBC 백분토론 4회, SBS 수요토론 이것이 여론이다 3회, KBS 일요진단, 백인토론 등 5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MBC ‘100분토론’에는 2002년 이후 총 32회를 출연, 최다 출연자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100분토론 시청자들이 뽑은 최고의 진보 논객은 노무현으로 14.5%의 선택을 받았고, 노회찬은 12.7%로 2위를 차지했다. 좋은 토론에는 진행자 손석희와 토론자 노회찬이 있었다.  2004년 1월 15일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자격으로 MBC 100분토론에 참석한다. 두 달쯤 뒤의 “삼겹살 불판” 발언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이날이야말로 ‘노회찬 어록’ 탄생의 조짐을 보인 날이다. “50년 동안 정치를 끌어온 분들, 지금 말이죠,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 정도로 학생의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유기정학 내지 무기정학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국민들이 보기에는 유기정학 내지 무기정학감이에요. 그러면 이번 선거 다 안 나와야 합니다. 한 4년 동안 유기정학 당해야 돼요. 그런데 왜 자꾸 나오려고 그래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판갈이를 해야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3급수에다 2급수를 타면 그게 2급수가 됩니까. 조금 더 나은 3급수지? 국민들은 1급수를 원하고 있어요.”   2004년 1월 15일 노회찬 발언 장면 ⒸMBC 이어 두 번의 KBS 심야토론(사회 정관용)에서 노회찬은 당시 거대 양당(한나라당,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정치사에 남을 촌철살인 비유를 날렸다. 노회찬의 발언은 3월 20일 KBS 심야토론(‘급변하는 민심 어떻게 볼 것인가’)을 계기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50년 묵은 불판을 갈아엎자”는 판갈이론이 답답한 국민들의 가슴을 뻥~ 뚫어 놓은 것이다. ‘노회찬 어록’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다.   2004년 3월 20일 발언 “한나라당과 민주당,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193명 의원들이 탄핵을 다 잘한 일이라고 주장하셨잖습니까? 편파방송 운운하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운 탄핵가결 화면을 TV에서 자주 보여주면 오히려 한나라당, 민주당에 유리한 것 아닙니까?” “한국의 야당은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죽인 것이 아니라 다 자살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님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이제 저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길을 걷다가 지갑을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갑을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죠.” 보름쯤 뒤인 2004년 4월 3일, 노회찬은 KBS 심야토론에 다시 출연해 설전을 벌였다. 토론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노회찬의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란 말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사는 서민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남겼다. 물론 기대에 부응하듯 노회찬의 톡톡 튀는 사이다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선거 때만 되면요, 갑자기 어디서 산천어, 열목어 다 나타납니다. 다 깨끗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을 해봤지만은 깨끗하다는 산천어, 열목어 선택해봤자, 그 정당이 3급수, 4급수가 들어간 정당에다가 산천어, 열목어 넣어 버리면요, 곧 물고기가 죽습니다. 아니면 그 물고기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야 살아남는 거죠.” : 원내 정당들의 선거철 이미지 변신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의심스럽다며. “왜 한나라당이 갑자기 노인복지를 거론하는가.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야기시킨 탄핵으로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이 단축됐어요. 그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제일 가난한 민주노동당이 제일 번지르르한 건물을 쓰고 있습니다.” : 열린우리당의 폐공판장 당사,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를 비판하며. “차떼기 야당, 탄핵 야당, 냉전야당, 지역주의 야당, 이런 야당들은 이제 좀 물러서야 됩니다. 이제 역할이 거의 다 끝났거든요! 지금 야당은 면허정지도 아닌 면허취소 상태입니다. 그중에는 장롱 면허도 있습니다.” : 야당교체론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이 1번이고, 민주당이 2번이고, 열린우리당이 3번입니다. 민주노동당은 12번입니다. 1번과 2번이 망친 나라를 12번이 살리겠습니다. 유권자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노동자·농민·서민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표를 몰아달라며.       “정치는 대중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 팟캐스트(podcast) 과   ‘팟캐스트’란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의 합성어로, 자동 업데이트 되는 관심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아무 때나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맞춤형 개인 미디어를 말한다. 컴퓨터 기술과 관련돼 나타난 새로운 매체인 뉴미디어(new media)의 시대,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팟캐스트(podcast)가 새로운 미디어로 주목받는 가운데 이 출격했다.    2012년 1월 18일 첫 방송(주제: ‘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의 횡령사건’)을 시작한 은 유시민과 노회찬이 진행하는 정치시사 팟캐스트 프로그램으로, 그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를 단숨에 제치고 팟캐스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정치 바깥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팟캐스트를 선택했다. “아이템은 오래 상의하지 않는다. 한 명이 ‘이거 어때?’ 하면 ‘그거 할 말 많지’ 하며 확정한다. 기성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지만 중요한 이슈에 집중한다.” ‘무재미’를 추구한다지만 두 남자의 수다가 재밌다. 을 통해 노회찬은 ‘소신남’으로, 유시민은 ‘의리남’으로 성격을 정했다.     2012년 3월 7일 부산대 정문 앞에서 열린 팟캐스트  토크콘서트에서 통합진보당 유시민(왼쪽) 공동대표와 노회찬 공동대변인이 ‘장물누님 2편’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회찬의 2012년 19대 총선 출마로 인해 3월 22일 언론 마피아를 다룬 9편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은 그 뒤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이 함께 진행하는 로 이어졌다.    <1억3천만회의 다운로드를 기록한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 :뉴데모크라시를 열어가는 뉴미디어   방송 현장 2014년 5월 27일 정의당 팟캐스트 (얼마 후 ‘노유진의 정치카페’로 명칭 변경) 1회가 처음 방송된다. ‘노유진’은 노회찬과 유시민과 진중권 성을 따 만든 이름으로, 다양한 정치 현안을 분석하는 방송으로 청취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2016년 4월 2일 오후 5시 창원 성산구 상남동 분수광장. 창원 공개방송   2016년 4월 18일 100편(주제: 총선 이후, 그리고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2년여 동안 내려받기 횟수만 1억2000만 건을 기록했다고 한다. 1편당 평균 백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청취한 셈이다. 를 연출한 백정현 피디(정의당 뉴미디어실장)는 ‘가 한국 정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가장 결정적인 역할은 ‘정치가 대중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답했다는 것이다. 정치라고 하면, 보통 다 외면하고 혐오하기까지 하지 않나. 사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을 거둬내고, 시민들 스스로가 정치의 주인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지금까지 정치와 정당이 국민에게 말 거는 방법은 늘 언론이라는 매개를 통해서였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말을 걸어야 했고, 그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왜곡이나 편향, 의도적인 조작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는 ‘수다’를 통해서 우리 정치가 갖고 있는 함의를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달했다.” 당시 ‘무관의 백수’ 노회찬은 “2014년 5월 27일 첫 방송을 할 때만 해도 이 팟캐스트가 2년씩 갈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종방 당일 페이스북에 장문의 소회를 남기며 자평했다.  “IT혁명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데이터통신을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 생활도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혁명적 변화 중의 하나가 뉴미디어의 출현이며 는 뉴미디어의 존재방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사례일 뿐이다. 올드 미디어에 지친 사람들에게 뉴미디어가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도 새롭게 발전할 계기를 갖게 된다. 뉴미디어가 이미 뉴데모크라시(새로운 민주주의)를 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자정리(會者定離)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왕 헤어지는 것이라면 헤어질 이유가 없을 때 헤어지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일각에선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는 법이라며 거자필반(去者必返)을 얘기하지만 장강의 뒷물결이 도도히 흘러오길 기대한다.꽃이 2년간 피었으면 충분히 핀 것이다.”   마지막 소회를 밝히는 노회찬 (정의당TV 화면 갈무리)     “손 교수님을 토론자로 앉혀서, 가차 없이…. 그게 제 소원” : 동갑내기 노회찬과 손석희의 남다른 인연 1956년생 동갑내기인 손석희와 노회찬,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2009년 11월 19일. 노회찬은 이명박 정부의 MBC장악 시나리오에 의해 쫓겨나게 된 손석희의 마지막 MBC 100분토론(‘100분토론 10년, 그리고 오늘’)에 출연한다. 손석희는 7년 11개월 동안 100분토론의 진행자였다.  자칫 자칫 무거워질 수 있었던 마지막 방송에서도 노회찬은 특유의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발언이 길지도 않은데 (손석희 진행자가) 자르고 그래서…. 개인적인 소원이 제가 사회를 보고 손 교수님을 토론자로 앉혀서, 가차 없이(웃음)…. 그게 제 소원이었는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2009년 11월 19일 손석희의 MBC 100분토론 마지막 방송에 출연한 노회찬 화면 갈무리 9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7월 24일, 노회찬이 떠난 다음날 손석희가 진행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제목은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였다.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앵커브리핑을 마쳤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던 그의 말처럼 비록 마음은 부서졌지만 부서진 마음의 절실함이 만들어낸 진보의 역사. 그렇게 미련하고…또한 비통한 사람들은 다시 계란을 손에 쥐고 견고한 바위 앞에 서게 될 것인가.” 이틀 뒤인 7월 26일의 앵커브리핑 ‘솔베이지의 노래’에서 손석희는 노회찬을 이렇게 불러냈다. “제가 진행했던 (2002년) 대선 직전의 100분토론에서 그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그 날 이후에 때로는 폐부를 찌르고, 때로는 해학으로 치유하는 토론의 새로운 세계를 연 사람…  이 폭염의 더위 속에서 끝없는 인파가 그의 빈소를 찾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한 번쯤 듣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그런 언어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것은 정치권 안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모함과 놓으려 하지 않는 특권뿐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의 언어 안에 담긴 온기와, 위로와 응원의 말을 되살려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여름날이 가고 더 세월이 가서 누군가 지금도 그를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대답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최고의 진행자는 최고의 토론자를 떠나보냈다.   2018년 7월 24일 JTBC 뉴스룸(‘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 화면 갈무리   2018년 7월 26일 JTBC 뉴스룸(‘솔베이지의 노래’) 화면 갈무리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노회찬. 한 사람에 대해,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앵커가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라는 제목의 앵커브리핑 도중 20초간 말을 잇지 못한다. 방송 사고에 가까운 침묵의 눈물이었다. JTBC로 오기 전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노회찬을 초대해 특별강의를 했던 일화를 전하며 손석희는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제가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밝힌다.   2019년 4월 4일 JTBC 뉴스룸(‘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화면 갈무리 세 번의 앵커브리핑으로 노회찬을 추모한 손석희는 그가 떠난 지 1년이 되는 2019년 7월 23일 방영된 tbs TV의 추모 특집 다큐 ‘함께 꾸는 꿈, 노회찬’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따뜻한 사람, 휴머니스트로 기억되면 좋겠다”라는 개인적인 바람을 전한다.   “(아무도) 이분을 대체할 수 없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다.” : ‘김어준의 파파이스’(Papa is)와 ‘김어준의 뉴스공장’ . 한겨레TV가 제작하는 시사탐사쇼 형식의 인터넷 방송으로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진행을 맡았다. 노회찬은 단골손님이었다. 노회찬의 말은 ‘노회찬답게’ 역시 너무나 시원하고 통쾌했다. 대표적인 것을 하나 꼽는다면 바로 노회찬의 이른바 ‘진박 선언’.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 중에 안 지키고 있는 것들만 공약으로 하겠습니다. 진짜 ‘진박’이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2016.2.5.)에 출현, ‘진박 선언’을 해 폭소를 터뜨리게 한 노회찬 화면 갈무리 2016년 2월 5일 에 출연한 노회찬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키지 않은 공약으로 총선 공약을 채우겠다”고 선언, 박수갈채를 받은 것이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의 ‘진박 선언’ 내용을 간추려봤다.  “대통령 스스로의 약속을 안 지키는 대통령은 많았지만, 자신이 한 약속을 정면으로 반대로 위배하는 건 (박 대통령이) 처음이다. 공약집에 ‘해고요건 강화’라고 밝히고 해고를 어렵게 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는데, 지금은 ‘쉬운 해고’를 밀어붙이고 있다.” “4·13 총선 공약 중 최대 5개의 공약은 박 대통령이 지키지 않은 좋은 공약들만 추려서 내걸겠다. 진짜 ‘진박’이 누구냐, “‘진박’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가장 즐겨보는 애독서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인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다. 이 책을 다시 찍는다면 ‘약속을 바꾸는 세상’으로 제목을 바꿔야 한다.” 노회찬은 2017년 3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TBS 라디오 아침 시사프로그램 의 수요일 ‘노르가즘’ 코너에 고정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2018년 2월 뉴스공장은 라디오 청취율 종합 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방송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만에 이룬 쾌거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전체 1위를 기록한 건 국내 언론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노르가즘!!’ (사진=TBS)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자신의 트위터에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자들을 응원한 엽서 사진을 올렸다(2018.1.3.). 노회찬의 길동무가 된 염은비 동화작가가 색깔펜을 통해 직접 손으로 그림과 글씨를 써서 만든 것이라 특별함이 눈에 띈다. (사진=노회찬 트위터 갈무리) 노회찬이 떠난 다음날인 2018년 7월 24일 오전 방송된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은 “(아무도) 이분을 대체할 수 없다. 안타깝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어 “이런 분들이 후원금 걱정없이 정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컬렉션] 촌철살인 노회찬의 말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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