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주기

    #3 끝나지 않은 싸움

      #3_1 나머지 도청 테이프는 어디에 있나   “270여 개의 테이프가 서울중앙지검에 그대로 보관돼 있습니다.   삼성 X파일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선,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271개의 테이프가 있다. 검찰이 당시 압수수색하여 확보한 274개의 테이프 중 '삼성 X파일'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3개의 테이프를 뺀 나머지 테이프들이다. 2009년 8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노회찬은 이렇게 말했다.   "270여 개의 테이프가 서울중앙지검에 그대로 보관돼 있습니다. 국회와 국민이 노력하면 테이프 공개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진 ① 2009년 8월 1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좌담회 함께 참석한 김용철 변호사도 뜻을 함께 했다.   "X파일의 나머지를 다 공개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부정한 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밝혀야 한다. 재벌이 주는 정치자금은 주주의 돈이고 국민의 돈이다. 그 돈으로 권력 체계를 유지하는 거다. 검찰도 삼성을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좌천된다. X파일 사건은, 삼성은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그들이 이후 어떤 일을 했을지 모른다.   노회찬은 이미 2005년 12월 14일 최초의 검찰수사결과 발표 이후부터 특별법을 만들어 274개의 테이프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2013년에 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문재인, 정청래, 윤호중, 우상호, 우원식, 서영교, 박지원, 박범계 등 42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274개의 테이프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 이후 1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 차례 정권이 바뀌었고, 심상정의 을 공동발의한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이 되기도 하였지만 테이프는 아직도 미공개 상태다. 274개의 테이프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74개의 테이프가 공개되었더라면, 어쩌면 단죄되었을 수많은 검은 커넥션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었을 수 있다. 만약 274개 테이프의 내용이 공개되었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또 다른 민주주의 파괴가 재벌, 검찰, 고위관료, 언론 등의 검은 결탁에 의해 시도되었을 수 있다.   #3_2 노회찬이 던진 질문들   그들은 아직 건재하다   “저는 삼성그룹이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법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순응할 것을, 이제 한국 사회로 귀순할 것을 강력히 요청합니다.” - 노유진의 정치카페 ‘우리 모두 국민 기업 지킴이가 됩시다’ 편   단죄받지 않았던 삼성은 노회찬 의원의 요청과 달리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에 '귀순'하지 않았다. 이건희의 뒤를 이은 이재용은 박근혜-최순실에게 경영권 승계 청탁 명목으로 수십억의 뇌물을 건넸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던 당시 검찰 전현직 간부들 중 다수는 퇴직 후에도 로펌・기업 임원 등 주요 직위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까지도 검찰권력은 부정한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들은 번번이 수사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봐주기식 조사로 흐지부지 되었다. 대통령 가족을 둘러싼 각종 특혜・비리 의혹, 측근들의 인사 농단과 정책 개입 정황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삼성 X파일의 '그들'은 아직 건재하다.   삼성 X파일 사건에서 노회찬이 남긴 질문을 곱씹어 보자   첫 번째, 권력과 자본의 유착은 이제 사라졌는가. 재벌과 정치권의 유착, 재벌의 검찰 관리 및 '삼성장학생'의 존재까지. 당시 존재했던 이 검은 유착들이 지금은 없는가.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는 어떻게 어떤 내용으로 마련되어야 하는가. 두 번째, 특히 시장권력에 대한 감시는 어떻게 가능한가. 삼성그룹이 법질서를 무력화하면서 불법승계를 기도해왔다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과연 경제민주화는 가능한가. 대기업 경영의 오너리스크, 기득권 세력 자녀들의 부모찬스, 계속되고 있는 중대재해, 넘쳐나는 불안정 노동. 경제민주화가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는 최근 상황에서 이 문제의식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세 번째, 검찰과 법원은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검찰권의 오남용으로 검찰은 완전히 망가졌고, 사법부의 이른바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의심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살아있는 권력에 아첨하고, 죽은 권력을 물어뜯는 검찰의 못된 습관과 재벌대기업 총수 등에 대한 봐주기, 정치에 대한 지나친 개입의도가 숨어있는 판결로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법원을 완전히 바꿀 방법은 무엇인가.   곽재훈, 문재인과 ‘삼성X파일’문제, 왜 논란인가?, 프레시안, 2017.1.23. 김경미‧양태성, 〈(자유인 인터뷰 8)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 프레시안, 2011년 8월 30일. 유인경, 유인경이 만난 사람-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주간경향, 2013.2.24. 이춘재, 노회찬, ‘떡값 검사’ 공개로 ‘검찰의 적’ 됐다. 한겨레21, 2018.7.30. 조현연, 노회찬, ‘언터처블 삼성공화국’을 건드리다. 프레시안. 2020.12.14.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연구소, "삼성 X파일은 19금,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결", 프레시안, 2011.08.30. 노회찬, ⟪나를 기소하라⟫. 정보와 사람, 2008. 노회찬, ⟪노회찬과 삼성 X파일⟫, 이매진, 2012.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생각해봤어?⟫, 웅진지식하우스, 2015년. 노회찬 의원실, ⟪법은 만 명한테만 평등하다⟫, 정보와사람, 2007년.   목록으로 돌아가기

  • 7주기

    #2 노회찬, 의원직을 박탈당하다

    #2_1 검찰은 떡값 검사 누구도 수사하지 않았다     “검사의 공소장인지 아니면 변호인의 변론요지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 2005년 12월 14일, 서울중앙지검이 발표한 삼성 X파일 사건 수사결과에 대해   검찰은 2005년 12월 14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건희, 이학수, 홍석현 중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건희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고, 이학수, 홍석현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떡값 검사는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1997년 대선 직전 대선후보들에게 약 100억 원의 자금을 건넨 행위, 검찰 간부들에게 떡값을 준 행위 모두 역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컷뉴스) 2005년 12월 14일, 삼성 “무혐의”, 이상호 “기소”...“X파일” 수사결과 오늘 발표 https://www.nocutnews.co.kr/news/106823?c1=191&c2=194   대신 다른 사람들이 기소됐다. X파일 테이프 내용을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 녹취록 전문을 보도한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  노회찬 의원은 이날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문을 '변호인의 변론 요지에 더 가깝다.'고 총평했다. 이때 사건수사팀을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노회찬의 경기고 친구 황교안이었다. 부정선거 전도사 그 황교안, 맞다.  노회찬 의원이 유신반대 유인물을 뿌릴 때 황교안은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했다. 피의자와 공안검사로 만났을 때 노회찬 의원이 "서울구치소가 덜 춥고 괜찮다."고 했더니, 황교안이 "그게 문제다. 구치소 지을 때 이렇게 따뜻하면 안된다."고 했던 사이다. 황교안이 박근혜의 총리로 임명될 때 노회찬 의원은 "동기여서 죄송하다."고 했었다.     “검찰의 기소를 환영한다.   황교안은 수사결과를 발표한 다음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수사"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수사결과 발표 이후 '검찰은 삼성그룹의 서울 서초동 출장소'라는 비판이 거세졌다. 역시 검찰을 수사 주체로 세운 것은 잘못이었다. 노회찬 의원은 검찰의 수사 결과를 비판하며 이렇게도 말했다.    "주식회사 검찰의 고객은 3부류가 있다. 출국정지・검찰소환이 면제되고 서면조사 처리되는 이건희 회장은 다이아몬드 회원이다. 골드회원은 비공개 조사가 원칙이고, 조사한 내용이 전부 진실로 인정되는 이학수(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 김인주(부회장)씨 등이다. 이들은 말 바꾸기를 해도 최신의 진술만을 인정한다.  이에 반해 일반회원은 MBC 이상호 기자같은 부류다. 검찰은 일반회원에 대해 무조건 기소하거나 혹은 자동기소 처리된다." 정확한 비판이었다. 노회찬 의원에게 이런 비판을 받은 검찰은 2007년 5월 21일,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뒤 2년이 흐른 다음, 노회찬 의원을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다. 노회찬은 다이아몬드 회원도, 골드 회원도 아니었다. 이때 노회찬의 첫마디는 "검찰의 기소를 환영한다" 였다. 영상에서 그 전체 발언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 ① 삼성 X파일 관련 검찰 기소에 대한 노회찬의 입장 "검찰의 기소를 환영한다"   #2_2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노회찬의 의원직을 박탈하다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이  바로 삼성 X파일입니다.  - 2009년 1월 19일 1심 선고 공판, 노회찬 법정진술*   검찰의 기소 이후 노회찬 의원은 오랫동안 고통받았다. 도합 6년이었다.  2009년 2월,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판사는 현재 국민의힘의 추천을 받아 헌법재판관이 된 조한창이었다.     사진 ① 2009년 2월 9일 1심 공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앞 판결요지는 이랬다.   “삼성이 특정 검사에게 떡값을 줬다는 주장은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 의한 것인데 이는 떡값을 지급한 것이 아니고 예정한 것임에도 피고인의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돈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터무니 없는 논리였다.  최후진술에서 노회찬은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진실의 달은 바로 삼성 X파일"이라고 지적했고, 1심 판결 직후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며 비판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 2013년 2월 14일, 의원직 박탈 선고 후 국회 기자회견   2009년 12월 2심에서 노회찬은 무죄를 받는다. 그러나 2011년 5월 대법원은 노회찬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일부 유죄를 인정해 사건을 파기 환송한다. 주심 양창수 대법관의 논리는 이랬다.   “녹취록의 대화 시점은 노 의원이 내용을 공개한 시점으로부터 8년 전의 일...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하다고 할 수 없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국회 외에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기자나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컨대, 노회찬의 죄목은 공적관심사항이 아닌 떡값 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파일로 올렸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에 대통령이 수차례 입장을 밝히고, 법무부장관이 떡값 검사 명단을 확보하라고 지시하고, 국회가 특별법과 특검을 놓고 격돌하고, 삼성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으며, 8천억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았다. 2013년 노회찬 의원은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다. 이때가 그 유명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다.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명단 공개 8년 뒤였다.     사진 ② 2013년 2월 14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정의란 무엇인가 - 국회를 떠나며" 국회를 떠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2_3 노회찬, 국회를 '조기 졸업' 하다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암 걸린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릅니까.  - 2013년 2월 14일 국회 기자회견   면책특권으로 인해 국회에서 직접 말을 하면 괜찮고, 보도자료를 '인쇄'해서 배포해도 괜찮으나, 인터넷에 올리는 것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 올린 내용이 공적관심대상이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논리다. 이것이 사법부의 논리였다.     노회찬 의원이 2005년 8월 18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떡값 검사 관련 보도자료   "그날 (국회) 회의는 TV로 전국민에게 중계가 됐다. 몇십만명이 그 TV를 봤고. 인터넷에 올려서 본 것은 당시 조회수가 1만 4천 건에 불과했다. 대법원 홈페이지를 보니 그들도 보도자료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리고 있더라. 또 국회의원의 공적 역할을 감안할 때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될 수 있는데 뇌물수수가 사생활이라니..."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2013년 2월 24일   사실, 대법원 최종 판결 전 여야 국회의원 159명이 재상고심을 연기해달라는 탄원서를 올렸었다. 여야 152명의 의원들이 공동발의하여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상정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입법부의 고민을 무시하고 판결을 강행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앞두고 159명의 의원이 선고연기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질 거라고 봤는데 판결이 강행되어서 놀랐다. 처음 유죄를 내렸던 1심도 판결문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선고유예가 마땅하나, 과거에 나의 민주화운동 전과 때문에 선고유예가 불가하고 이 법에는 벌금형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실형을 내린다고 변명하듯 판결문에 적었다. 그래서 법을 개정하려고 152명이 공동발의한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사법권의 과도한 횡포이자 폭력이다. 폐암환자 수술하라고 하니 멀쩡한 위를 제거한 형국이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2013년 2월 24일 사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최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기졸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노회찬 의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이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볼 때 이것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결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알려줘서도 안 되는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사회의 혐오감을 갖게 하는 반사회적 판결이다.”  - 2011년 8월 30일, 프레시안 인터뷰   이 인터뷰를 한 때가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문제로 한여름 길 위에서 30일 단식을 한 이후였다. 확실히 법원의 판결은 '반사회적'이었다. 그의 인터뷰를 조금만 더 따라가 보자.   “이 사건은 거대권력들의 결탁에 의한 용서할 수 없는 부패행위라는 것에 대해서 한나라당까지 모두 인정한 상태였다.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로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해서라도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한다는 데 여야가 모두 동의했던 사안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299명 중에 거의 99.9%가 두 개의 법안, 한나라당이 제출한 테이프 공개 법안과 당시 열린우리당 등이 제출한 공개 법안에 모두 서명을 했다.  (중략)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제대로 수사된 것도 없다. 누가 수사를 받았나? 나와 이상호 기자만 수사를 받았고, 나하고 이상호 기자만 재판을 받았다. 당시 홍준표 의원도 "노회찬은 무죄다"라고 제일 먼저 말을 하였다.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수사를 안 해서 법무부 차관까지 있으니깐 수사를 하라고 했는데 법무부 차관이 있다는 것을 왜 공개했느냐는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 결과를 받고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영상 ② '국회를 떠나며' - 2013년 2월 14일 대법원 최종판결 후 국회 기자회견 노회찬 의원이 떡값검사 명단 공개 후 의원직 상실까지의 상황이 포함된 영상입니다. 부디 끝까지 시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 4년 고생해서 졸업하는 것을 제가 8개월 만에 졸업을 해서, 조기졸업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국민들로부터는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은 든든합니다. - 2013년 3월 25일 JTBC 시사돌직구 단순한 유머를 넘어, 단단하고 거대한 품격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3 끝나지 않은 싸움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7주기

    #1 삼성 X파일 사건과 노회찬의 떡값 검사 명단 폭로

      #1_1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지다.   “두 명이서 15개를 운반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30개는 무겁더라구.   1997년 9월 9일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신라호텔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날 대화를 안기부(현 국정원)가 도청했고, 2005년 7월 22일, MBC가 보도했다. 불법 대선 자금 제공, 고위검사들에 대한 금품로비 등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의 시작이다. 삼성 X파일 사건은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정경유착, 정언유착 사건이다.     사진 ①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의 대화록'을 읽어내려가고 있는 노회찬   안기부는 1992~1997년 사이 이른바 ‘미림팀’을 운영했다. 비밀도청팀이었고, 불법적 조직이었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정권에서도 불법도청이 있었던 것이다. 미림팀은 해당 기간 동안 1,000여개의 불법도청테이프를 생산한 것으로 추산된다. 도청 대상은 정치인, 언론사 사주, 청와대 고위 관료, 군고위직 등을 망라했다. 삼성 X파일은 이 가운데 일부였다. 나중에 검찰은 미림팀 팀장이었던 공운영이 사적으로 보관하던 도청테이프 274개 및 녹취록 13권을 압수한다.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습니다.   삼성 X파일을 가장 먼저 보도한 MBC이상호 기자는 ‘고발뉴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삼성이 금권으로 대선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검찰 간부들을 길들이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천신만고 끝에 입수했습니다. ...(중략)...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직감했습니다. MBC 사장, 보도국장을 비롯해 보도를 반대하는 수뇌부를 상대로 10개월을 투쟁한 끝에 보도에 성공했습니다.그러나 뇌물을 받은 검찰간부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정치권이 모두 삼성 눈치를 보고 있던 그 시절,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습니다.  재벌세력의 금권 쿠데타에 대한 단호한 처벌 의지와 경제민주화 실현 필요성을 피력하는 그를 신뢰하게 되었고, 삼성 X파일과 뇌물 검사 명단을 넘겼습니다.”   최고위급 검찰간부들은 명절 때마다 삼성으로부터 500-1000만원의 금품을 제공받았다. 떡값 명목이었다.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MBC는 검사들의 이름을 비실명으로 처리했다.   사진 ② 2005년 8월 3일, 특별검사제 도입 및 ​​이건희 회장 처벌 촉구 기자회견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X파일에 언급된 검사를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그룹은 대국민사과문을 내놓았다. 검찰수사가 시작됐고, 주미대사로 있던 홍석현은 자진사퇴하였다.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은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유일하게 노회찬 의원이 이상호 기자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1_2 노회찬, 떡값 검사 명단 실명을 공개하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법사위 회의장에서 노회찬 의원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의 대화록’을 읽어내려갔다. 2005년 8월 18일이었다.   -홍석현: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 -이학수: 할 만한 데는 해야죠. -홍석현: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중략) -홍석현: 김두희는 2천 정도. 김상희는 거기 들어 있으면 5백 정도 주시면은 같이 만나거든요. 석조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그 다음 생각한 게 최경원. -이학수: 들어 있어요. -홍: 들어 있으면 놔두세요. 한부환도 들어 있을 거고. 이번에 제2차장 된 부산에서 올라온 내 1년 선배인 서울 온 2차장, 연말에나 하고. 지검장은 들어 있을 테니까 연말에 또 하고... (생략).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자들은 당대의 내노라하는 전현직 검사들이었다. 이들 7명 명단은 표와 같다.   표 ① 고발뉴스,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7인 명단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옳은 일이라면,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나는 한다."   [2005년 8월 18일] 입장문 '나를 기소하려면 하라'     “특검이 실시되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데 그치지 않고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드러난 재벌그룹-정치권-언론사-국가권력기관의 검은커넥션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싸웠다.   사진 ③ 2005년 9월 9일 삼성그룹 본관 앞, X파일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문화제   검찰이나 국정원이 사건 수사를 맡아서는 안 되고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삼성에 의해 오랫동안 관리된 검찰이 사건수사를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 이래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삼성그룹은 막대한 불법자금을 쏟아부었다. - 2005년 7월 27일 프레시안 노회찬 기고글   노회찬 의원의 주장처럼 삼성그룹은 아주 오랫동안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   알려진 것만 해도 이승만 정권 시절 자유당 정부에게 4억 2500만환(현재 가치로 최소 300억 이상)을, 전두환 정권 시절 총 220억 원의 뇌물을, 노태우 정부 시절 총 250억 원의 뇌물을 제공했으나, 이때까지 삼성그룹 총수가 실형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뿐인가. 1999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에게 삼성그룹 구조조정 본부가 5억을 전달했으나 어떤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고, 2002년 대선 직전 삼성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각 대선 후보 측에 총 385억여원을 제공했으나 역시 실형을 살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1997년 대선 당시의 불법정치자금 녹취록이 나왔으니 노회찬 의원이 “악의 커넥션을 끊으려면 특검뿐”이라고 주장한 것은 당연했다.   #1_3 응원과 지지가 넘치다. 그러나...   “국민만 믿고 전진하십시오. 당신의 선택, 잘하신 것입니다.   떡값 검사 명단 공개 후 노회찬 의원은 국민들의 커다란 응원을 받았다.   “만약 의원님을 검찰에서 기소한다면 한 번도 촛불집회 같은 것 참여해본 적도 없지만 끝까지 참석해서 진실의 편에 서겠습니다.” “회찬님이 아니고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의혹은 국민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 본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떡검사들 실명 공개하신 거 자랑스럽습니다.” “국민만 믿고 전진하십시오. 당신의 선택 잘하신 겁니다.”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진 ④ 2005년 8월 19일, 지지자가 보내준 시루떡과 메시지 카드   십시일반 후원이 이어졌고, 홈페이지 방문자는 폭주했다. 떡값 검사 명단 공개 단 몇 시간만의 일이었다. 당시 노회찬 의원과 함께 했던 박영선 보좌관의 글 중 일부다.   “떡값 검사 명단이 발표된 홈페이지 최근 뉴스 게시판과 보도자료 게시판의 댓글만 150여 개가 넘고, 방문자는 오늘 하루 몇 시간 동안 2만 명이 넘었습니다. ...(중략)...홈페이지에는 의원님께 주례를 맡아달라는 글과 함께 특별검사가 되어야 한다, 의원님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자랑스럽다는 지지 글과 사무실로는 격려전화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소액 2천 원부터 KT직원과 학원 강사, 학생들의 후원까지 후원금이 홈페이지를 통해 답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으로 지난 몇 달간의 후원 금액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실로 고맙고 눈물겹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공개가 한 방을 빗줄기 같다며 선뜻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의 정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X파일의 본질은 불법대선자금과 불법로비가 아니라 불법도청이다   사태는 쉽게 흐르지 않고 있었다. 처음 검찰은 공소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점, 증거자료가 불법적 도청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사건을 수사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결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긴 했으나, 애초에 대통령은 ‘사건의 본질은 불법대선자금과 불법로비가 아니라 불법도청’ 이라며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8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도청 사실에 대한 수사는 이미 국정원이 자체 조사를 하고 있고 검찰 수사도 병행되고 있다. 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특검에 반대했다.   심지어 대통령은 "이상한 테이프가 하나 나와서 또 이회창 후보 대선자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회창 씨는 1997년 '세풍' 사건 때도 조사를 받았고, 지난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세 번째 조사를 받으면 대통령인 내가 너무 야박해 보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2005년 8월5일) 노회찬 의원의 떡값 검사 명단 실명공개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2 노회찬, 의원직을 박탈당하다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6주기

    진보정치,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진보정치의 본격 등장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2004년은 노회찬이 처음 국회의원이 된 해이자, 한국정치에서 대중운동의 성장과 함께 거대양당이 아닌, 새로운 당이 극적으로 출현한 해이다.  의회 진출 직전인 2004년 3월 초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라디오 토론이니 점잖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난투극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 사과하라고 언성 높인다. 국민들 앞에 고개를 들 처지도 아닌데 희대의 영웅처럼 큰 소리다. CBS의 좁은 스튜디오가 동물원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점잖고, 상식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은 정치권을 꺼려하지 않았는가. 그 정치권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들어간다.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2004년 3월 3일 난중일기     영상. 2007년 의정보고영상, 1급수 정치인의 활동의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다.   “국민들은 1급수를 원하고 있어요.”   그는 여당이나 야당의 교체가 아니라 정치 전체를 교체하기를 원했다. 선거 때 마다 벌어지는 이합집산에  이른바 ‘전문가’들의 영입경쟁을 두고 노회찬은 이렇게 비판했다.    “사람을 보고 찍겠다는데, 선거 때만 되면요 갑자기 어디서 산천어, 열목어 다 나타납니다. 다 깨끗하다 이거죠. 그런데 우리가 이제까지 경험을 해봤지만은, 깨끗하다는 산천어 열목어 선택해봤자 3급수, 4급수가 들어가 있는 정당에다가 산천어 열목어 넣어버리면 곧 물고기가 죽습니다.” 🎙️2004년 4월 3일 KBS심야토론   “3급수에다가 2급수를 타면 그게 2급수가 됩니까? 조금 더 나은 3급수지. 국민들은 1급수를 원하고 있어요. 마실 물을 원하고 있는데 왜 3급수에다가 2급수를 타고 있느냐 이거예요.” 🎙️2004년 1월 15일 MBC 100분 토론   국민들이 원하는 1급수 만들기에 그는 온 인생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기존의 낡은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바꾸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여기까지 타고 온 1987년식 낡은 자동차를 이제는 새 자동차로 바꿀 때가 됐다.” 🎙️2017년 1월 12일 신년연설     진보정치의 쇠락   “낙선인사란 낙선자가 사과하는 인사라는 것을 첫 날부터 알게 되었다.”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노회찬가 한 말은 이랬다.   “기쁜 마음으로 기대를 갖고 투표했다가 결과에 실망한 분들이 심경의 일단을 털어 놓을 때마다 나는 영락없는 죄인이다. 일주일째 낙선인사를 다니고 있지만 낙선인사란 낙선자가 위로받기 위한 인사가 아니라 사과하는 인사라는 것을 첫날부터 알게 되었다.” 🎙️2008년 낙선 후 4월 18일 노회찬의 난중일기   이날 일기의 맨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시인 안도현이 우리에게 물었다. 오늘 나는 나에게 묻는다. ”   이 말이 정답이다.  그 정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회찬과 그의 동료들은  함께 달렸다.  제17대 대통령선거 민주노동당 경선 대구합동연설회 노회찬 후보 소개 영상.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     “저는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노동자 서민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2016년 2월 1일 총선 창원 출마 선언문) 노회찬의 고향은  노동자 서민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었고,  노회찬의 동료들은 이렇게 평가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멸종에 가깝게 된, 희귀종이 된, 비유하자면 ‘추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씨앗을 뿌리려는’ 아름다운 윤리적 주체들”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년, 394쪽   그러나 가는 길은 험했고,  노회찬은 계속 달렸다.    “새로운 역에 도착할 때마다 많은 동료들이 하차했다.”“처음 출발할 때 나를 이끌었던 그 기관차를 타고 계속 달렸다.” 📖구영식‧노회찬,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년, 54쪽.   고군분투하던 노회찬은 2017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박근혜씨가 구치소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판정내린 사람이 쓰고 있던 수용 면적의 10배를 쓰고 있어요. 지금 인권침해라고 제소해야 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 수용자들입니다.”   이 일로 당시 정의당 서울시당 성북구 위원회 당원들은  노회찬에게 ‘신문지 두 장 반 상’이라는 이름의 상장을 전달하는데  상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 사람은 대한민국의 진보정치인으로 정치가 사람들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국회 맨바닥의 차가움을 경험해보았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 맨바닥의 차가움이란  단지 국회 바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포복절도의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2018년 정의당의 신년인사회에서  노회찬은 기발한 사자성어를 이야기한다.  ‘포복절도’    “저는 정의당이 국민에게 드리는 약속을 네 글자로 집약해 ‘포복절도(飽腹絶盜)’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흔히 쓰는 포복(抱腹)과 달리, ‘가득 찰 포(飽), 배 복(腹)’으로 배를 가득 차게 만들고, 절도(絶盜)는 도둑을 근절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민생을 챙기고 세금도둑, 양심도둑을 근절하겠습니다.” 🎙️2018년 1월1일 신년인사회   노회찬에 따르면,  노회찬이 나아가는 방향은  교황도 인정한 방향이다.    “교황이 2013년 3월에 취임한 후에 쓰신 책에 놀라운 구절이 있어서, 제가 베껴 적기까지 했어요. ‘우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힘을 신뢰할 수 없다. 시장 만능에 맡길 수 없다.’ 시장이 모든 걸 다 조화롭게 해주지 못할 거라는 말이죠.” “여기 보면, ‘소득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자......’ 당으로 치면 진보정당입니다. 🎙️노유진의 팟캐스트 ‘이 시대에 필요한 은총은 뭔가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 방문을 계기로 교황에 대해 얘기하며 그가 말한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는 유명하다.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이 없고 누구나 원하는 만큼 교육 받을 수 있는 나라, 지방에서 태어나도 그곳에서 교육받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는 나라,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는 나라, 인터넷 접속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 📖노회찬, “진보의 재탄생”, 꾸리에, 2010년, 7쪽     그림 10 . 노회찬 의원의 자택에 정리해둔 오카리나 악보컬렉션.   “우리의 대중정당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현재를 미리 예측했던 걸까. 노회찬은 지금 다시 되새겨야 할 말들을 여럿 남겼다.    “100%예측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정의만이 유일한 가능성이다.” 📖2004년 7월 14일 난중일기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2012년 10월 21일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 연설문 “나는 진보정치가 더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더 현실화되어야 하고, 더 냉정하게 대중에게 평가받고, 평가받은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 📖구영식‧노회찬,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년, 179쪽     그림 11. 2007년 7월, 노회찬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발족식. 제7공화국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물은 흐르면서 점점 낮은 곳으로 자리하고 낮아질수록 차츰 모여서 갑니다. 산을 만나면 휘감아 돌고 언덕을 만나면 채워서 넘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떨어지면서 끝내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물, 바다로 모입니다. 진보정치가 상선약수의 정신으로 민중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20대 총선 창원 성산 노회찬 출마 기자회견문 2016년 2월 1일   노회찬의 꿈을 다시 꾸는 이들이 나침반으로 삼을 말들이다.   

  • 6주기

    국회, 민의의 전당인가.

    국회라는 곳   “민의의 전당이라고 했는데 민의가 없는 거죠. 자의만 있는 거죠.”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또 다른 곳은 ‘국회’다.  “저는 좀 국회가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민의의 정당이라면 그 이름에 걸맞는 행동들을 해야 하는데 전혀 민의와 상관없는 일들을 하고 계셔서 국회 불신이 제일 높아요.”(2018년 6월 27일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휴가 간 김어준을 대신한 진행자 장윤선의 질문) 이 질문에 대한 노회찬의 대답은 이랬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고 했는데 민의가 없는 거죠. 자의만 있는 거죠.”   민의가 없는 국회는 국민이 없는 나라와 같다.  국회는 민의로 흘러 넘쳐야 한다.  노회찬은 수없이 많은 기회에 이를 강조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라고 그러지 국회의원의 전당이라고 얘기 안 한다. 민의의 전당에서는 민의가 이겨야 한다. 당들끼리 의견이 다르면 민의를 쫓아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2017년 6월 1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에 다른 야당들이 협조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 가사 중에 님은 떠났다고 하면서 마음 주고, 표도 주고 다 줬는데 왜 떠나버렸느냐. 그러니까 민심을 떠나버린 국회를 질타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2018년 4월 20일 JTBC 정치부회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를 소개하며       2016년 7월 4일 국회 본회의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 영상. 노회찬의 연설은 국회를 민의의 전당으로 만드는 정수였다.   “친국민은 왜 없습니까?”   촛불 이후 박근혜씨가 탄핵된 이후에도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에서는 친박, 비박 논쟁이 벌어졌다. 민의가 없는 국회, 민심에서 유리된 정당은 늘 그런 식이었다.  노회찬의 말을 들어보자.    “거꾸로 묻고 싶은데, 왜 자유한국당에는 친박 비박만 있느냐. 친국민은 왜 없습니까? 보수는 원래 반국민입니까? 보수는 비국민입니까? 보수도 친국민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근데 친박 비박이 싸우고 있는데, 나는 친박도 아니야, 비박도 아니야. 나는 친국민이야...” 🎙️2018년 7월 5일 JTBC 썰전   당시 토론에 참여하고 있었던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 말을 듣고 웃었다.  멋쩍은 웃음. 그러나 이런 지적은  자유한국당 부류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었을 때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경찰병력이 버스로 철벽을 두른다고 해도 국회가 진심으로 민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국회는 안전하지 않다” 🎙️2004년 11월 12일 대정부질문 도중. “오늘 국회 앞에 철문이 잠겨 있기에 물어보니 시위대가 들어올지 몰라서 잠궜다고 했다”고 지적하며. “임진왜란 때 경복궁을 불태운 것은 왜병이 아니라 백성들을 버리고 달아난 선조에게 화가난 백성들”이라고도 하며, “오늘 같은 국회 정상화가 아닌 진심으로 민심을 위한 정상화가 되어야 국회 문을 열어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더 했다.     국민을 괴롭히는 국회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국회의원은 자신이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2006년 국회법사위에서 삼성X파일 사건으로 국정감사를 논의할 때다.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출석할 지를 토론하던 중  이런 말이 나왔다.  “이건희 회장은 현직 삼성 그룹의 CEO입니다.” 국감에 부를 수 없다는 말이다.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재벌의 대변인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을 ‘부를 자격이 없다’라는 얘기는 바로 ‘우리 국민들이, 우리가 대표하는 우리 국민들이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을 부를 자격이 없다’라는 얘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2006년 10월 17일 국회 법사위   노회찬 의원의 답이다.  국민의 대표는 누구라도  국감장에 부를 수 있다.  개인으로서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로서의 국회의원은 그래야 한다.    그림 6 . 2005년 12월 14일, 민주노동당 ‘X파일 대책위원장’ 노회찬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한민국 검찰이 재벌 감싸기를 넘어 재벌 앞에 엎드리기를 했다.”고 비난했다.   “다른 정당들과 협치를 해야 하는데 전경련과 협치를 하고 있는 거죠.”   노회찬은 국회가 국민의 대표이기보다는 또 다른 권력의 대변자라는 사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협력하는 정치 ‘협치’는 중요하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대신해 주어진 룰에 따라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 속에 경쟁도 있고 타협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는 누구와 경쟁하고 누구와 타협하는가.  노회찬의 예리한 시선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국회가 이루고 있는 다른 정당들과 협치를 해야 하는데 전경련과 협치를 하고 있는 거죠.”(2017. 6. 6.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경제권력과의 협치라는 본질. 이 때문에 양대 정당들은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싸우다가도, 어떤 문제에서는 협력한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인가. 혹은 다른 누구의 뜻이 집결된 곳인가.    국회 개혁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을 행사해 온 모든 사람들이 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권력 있는 자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 그들과 한 편인 정당들 그들은 민의가 아니라 자의만이 넘치는 국회를 만든 책임자들이다.  그 속에서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향유한다.  “6선이면 더 감형 사유가 됩니까?” 🎙️2004년 10월 14일 서울고등법원/서울지방법원 국정감사 중,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에서 피고인 중 한 명이 3선 국회의원인 점이 감형 사유가 된 점을 지적하며.   권력을 가진 자는 죄를 지어도 감형되는 관행을 노회찬이 이렇게 지적한 것은 매우 타당했다.    “밖에서는 국민을 괴롭히더니, 안에서는 사회자를 괴롭히네요.” 🎙️2004년 4월 KBS 100인 토론   TV토론에서 사회자의 토론진행을 무시하던 국회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권력을 향유하기만 하는 자들에 대한 일갈이었다.  2016년 6월 9일. ‘조선업 구조조정 대토론회’ 인사말에서 그는 배가 침몰할 때는 ‘세월호 방식’과 ‘타이타닉 방식’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을 행사해 온 모든 사람들이 이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2014.4.30. 노회찬의 난중 일기,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경제권력, 사회권력에 맞서 국민의 권력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묻는다. 요즘 정치의 역할은 어떤가.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 말고, 다른 권력에 맞서 싸우는 걸 본 적이 언제였나.   “구부러진 막대기를 펴기 위해 당분간 반대편으로 더 구부려야 합니다.”   국회를 개혁하기 위한 노회찬의 노력은 정치경력 내내 지속됐다.  2004년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뒤, 세비 중 대부분을 당에 반납하고, 노동자 평균 임금 180만 원만을 받았다. 당은 그 돈을 정책개발비 등에 사용했다.  한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치현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기 때문에 구부러진 막대기를 펴기 위해 당분간 반대편으로 더 구부려야 합니다.” 🎙️2004년 5월 27일 신동아 인터뷰   국회특수활동비 폐지를 위해서도 노력하였고,   그 결과 국회특수활동비는 대부분 실제로 폐지되었다.  이런 노력들은 사실 국회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그의 노력 중 일부에 불과하다.  진짜 국회를 바꾸고, 정치를 바꾸기 위해 노회찬이 집중한 것은 진보정치의 성장 그 자체였다.   

  • 6주기

    대통령, 누구의 아바타인가

    검증 안 된 사람, 대통령   “리더십이라는 것은 실제 이미지십에 불과한 것일 경우가 많다.”     “내가 만든 말인데, 현재 한국정치에서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실제 이미지십(image ship)에 불과한 것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증이 안 된 사람도 상관이 없다. 이미지가 끌고 가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30일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 인터뷰       사진 1. 2007년 경주서라벌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의 모습 노회찬의 말은 여전히 살아 있다.  현재의 정치 상황에 그대로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검증이 안 된 이가 한국정치의 리더가 되는 일에 국민들은 익숙하다. 불행한 일이다. 심각한 경제 상황 불평등과 차별의 심화 외교 정책의 난맥상 사회불안과 갈등의 조장. 대통령이 된 후, 공약을 파기하는 일도 다반사다. 노회찬 의원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지적하곤 했다.    “약속을 바꾸는 세상!”     사진 2. 2007년 8월 30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토론회 모습 어떤 대통령은 약속을 안 지킨다.  사실 한국정치에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많지는 않다. 탄핵으로 임기를 마감했던 박근혜씨는, 약속을 안 지키는 대통령을 넘어,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대통령이 됐다. 2016년 2월 노회찬이 한 방송에 출연하여 한 이 말은 이 점을 꼬집었다.    김어준: 총선 이기고 나서 가장 먼저 국회에서 만들 법안이나 제일 시급하게 고쳐야 될 게 뭡니까? 노회찬: 대통령 공약 중에서 가장 잘 만든 공약집이 박근혜 대통령 공약집이에요. ‘세상을 바꾸는 약속'! 제 애독서에요’(웃음) 한 권밖에 없는데 2권이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싶어요.(웃음) 왜냐면, 본인이 안 읽어본 것 같아요.(웃음) 이 책을 다시 찍는다면 제목을 바꿔야 해요. '약속을 바꾸는 세상'!(폭소)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게 뭐냐면 솔직히 정치인의 약속, 특히 대통령 후보의 약속 중에 안 지켜지는 것이 있잖아요. 다른 대통령들도 그랬고. 근데 스스로의 약속을 안 지키는 대통령은 많았지만, 자기 약속을 정면으로, 반대로 위배하는 대통령은 처음이에요. (공약집에) '해고요건 강화' 이렇게 돼 있어요. 해고를 어렵게 하겠다가 공약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쉬운 해고'를 밀어붙이고 있잖아요. 김어준: 그렇죠. 그것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막 화내고 있고. 속이 탄다고 그러고.  노회찬: 저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제1호 법안을 '해고를 어렵게 만드는 법안'으로 할 겁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는..(폭소) 그래서 제 최대 5개의 공약은 전부다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을 했지만(폭소).   또, 박근혜 대통령 공약 중에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원청, 하청 관계 속에서 괴롭힐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겠다는 엄청나게 좋은 게 있어요. 근데 안 하고 있어요. 이런 것만 (총선 공약으로) 해서. 진짜 진박이 누구냐?(폭소) 진박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된다. 노회찬 진박 선언.(폭소) 🎙️[박근혜] 약속을 바꾸는 세상. - 2016년 2월 5일 김어준의 파파이스   약속을 안 지키는 대통령에서 약속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대통령으로, 그리고 지금은, 약속이 아예 없는 대통령까지. 세상 많은 것은 변화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한국정치도 그렇다.     국민이 최대 피해자   “정치보복당한 것은 그를 뽑아준 국민들입니다.”   이명박이 감옥에 가기 전 논쟁이 붙었었다.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건 나라의 수치다.’는 주장이 한 편에서, 잘못한 대통령을 감옥에도 못 보낸다면 그게 나라의 수치라는 주장이 다른 한편에서  격돌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110억 원대 뇌물수수, 350억원대 횡령 등으로 검찰수사를 받게 되자, ‘정치보복’이라면서 반발했다.  이때 장제원 의원과 정진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다음은 너희들 차례다.”, “지금 이 순간 결코 잊지 않겠다.”라고 썼다. 모두 현 정부에서 한 자리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 노회찬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정치보복 당한 것은 본인이 아니라 압도적 표차로 그를 뽑아준 국민들입니다.” 🎙️2018년 3월 13일 트위터   그렇다.  국민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는 대통령! 국민에게 보복하는 대통령. 사태의 진실은 노회찬의 말로 인해 명확해졌다.  정치보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3. 2007년 노회찬 대선예비후보 전북 선본 출범식 현장     “어머니의 모습을 한, 아버지의 아바타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대부분의 대통령은  누군가의 아바타였을 지도 모른다.  국민은 자신의 대표를 뽑았을 뿐 그를 누군가의 아바타로 지정한 적이 없으나,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누구의 말을 듣는가’는 늘 이슈였다.  이명박에 대해  노회찬 의원은 이렇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동물의 왕국이다’로 이미 수정되었음을 확인합니다. 헌법 제1조 2항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은 상위 1퍼센트에 있고, 모든 권력은 대통령과 그의 형으로부터 나온다.’로 수정되었습니다.” 🎙️2009년 3월 9일, 진보신당 대표 후보 출마 기자회견문   박근혜에 대한 노회찬의 비판은 이랬다.    “어머니의 모습을 한, 아버지의 아바타이다” 📖2012년 10월 22일 난중일기.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며   박근혜씨는 추후 그의 아버지뿐 아니라 최순실의 아바타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어, 국민을 대표해야 하나 다른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는 대통령. 대통령이 누군가의 아바타라는 의심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지금 대통령은 또 누구의 아바타일까.    부적격 대통령   “다른 나라 국민의 인심을 얻겠다는 건가”   “인기를 끌고 인심을 얻는 데는 관심이 없으며, 대한민국을 선진화하고 모든 분야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는 단단한 각오로 일하고 있다”  이건 이명박의 말이다.  말 자체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단호한 각오 같다.  그러나 이 말이 이명박의 입에서 나왔다면 다르다.  대한민국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그가 한 일이 4대강 사업 같은 것이었으니까. 노회찬은 이렇게 비판했다.   “역대 정권도 소통의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러나 역대 어느 대통령도 임기 중에 인심을 얻는데 관심이 없다. 그러면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관심이 없으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다른 나라 국민의 인심을 얻겠다는 건지, 도대체 그 관심이 어디에 있는 건지 몹시 궁금합니다.” 🎙️2009년 11월 19일, MBC 100분 토론   한국 정치의 문제 중 하나는 대통령들이 국민의 인심을 잃을 때 마다,  대통령이 유사한 각오를 남발한다는 점이다.  “선거운동 하면서도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았다.”“별로 의미가 없다.”(2022년 7월 4일, 윤석열 대통령) 국민과 소통하기 가기 위해, 점심 번개를 자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2010년 5월11일 선릉역 인근에서의 점심 번개 장면이다.    “지난 10년간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단 최근 1년 6개월은 빼고서.”    노회찬의 이 말들을  시간만 ‘현재’로 하여  혹은 주어를 바꿔 다시 읽어보자.  어떤 느낌인가.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10년간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단 최근 1년 6개월은 빼고서.” 🎙️2009년 11월 19일 MBC 백분토론,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죄의식 없는 확신범” 🎙️2016년 10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비서실 등 국정감사 “최근에도 외국 갔다가 들어와 가지고 ‘방한’해가지고, 하도 자주 나가니까 가끔 ‘방한’해가지고 하신 말씀 보니까 전혀 변하지 않고 있어요.” 🎙️2016년 6월 28일 공정언론바로세우기 콘서트.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총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하다가 잦은 외국방문을 비판하며   한국정치의 역사는  되풀이 된다.  아주 나쁜 방식으로. 그 중심에는 부적격 대통령이 있다. 가장 힘든 건 국민이고, 위기를 헤쳐나갈 힘도 국민에게 있다.     “대한민국의 살아계신 전직 대통령은 모두 네 분입니다. 그중 두 분은 이미 다녀왔고, 한 분은 가 계시고 나머지 한분은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정말 이게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자리는 바로 국민입니다.” 🎙️2018년 1월 18일 트위터)  “예우를 받지 못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입니다. 참담합니다. 그래도 이 나라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위대한 국민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8년 3월 22일 트위터, 이명박 대통령의 감옥행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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