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기

#1 삼성 X파일 사건과 노회찬의 떡값 검사 명단 폭로

 
#1_1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지다.


 
두 명이서 15개를 운반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30개는 무겁더라구.

 
1997년 9월 9일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신라호텔에서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날 대화를 안기부(현 국정원)가 도청했고, 2005년 7월 22일, MBC가 보도했다. 불법 대선 자금 제공, 고위검사들에 대한 금품로비 등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의 시작이다. 삼성 X파일 사건은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정경유착, 정언유착 사건이다.

 
 
사진 ① 2005년 8월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의
대화록'을 읽어내려가고 있는 노회찬


 
안기부는 1992~1997년 사이 이른바 ‘미림팀’을 운영했다. 비밀도청팀이었고, 불법적 조직이었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 정권에서도 불법도청이 있었던 것이다. 미림팀은 해당 기간 동안 1,000여개의 불법도청테이프를 생산한 것으로 추산된다. 도청 대상은 정치인, 언론사 사주, 청와대 고위 관료, 군고위직 등을 망라했다. 삼성 X파일은 이 가운데 일부였다.

나중에 검찰은 미림팀 팀장이었던 공운영이 사적으로 보관하던 도청테이프 274개 및 녹취록 13권을 압수한다.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습니다.


 
삼성 X파일을 가장 먼저 보도한 MBC이상호 기자는 ‘고발뉴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삼성이 금권으로 대선후보를 포함한 정치인들을 매수하고 검찰 간부들을 길들이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천신만고 끝에 입수했습니다.
...(중략)...
보도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겠구나 직감했습니다. MBC 사장, 보도국장을 비롯해 보도를 반대하는 수뇌부를 상대로 10개월을 투쟁한 끝에 보도에 성공했습니다.그러나 뇌물을 받은 검찰간부들의 명단을 실명으로 보도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정치권이 모두 삼성 눈치를 보고 있던 그 시절, 유일하게 먼저 연락을 해온 국회의원이 노회찬이었습니다. 


재벌세력의 금권 쿠데타에 대한 단호한 처벌 의지와 경제민주화 실현 필요성을 피력하는 그를 신뢰하게 되었고, 삼성 X파일과 뇌물 검사 명단을 넘겼습니다.

 
최고위급 검찰간부들은 명절 때마다 삼성으로부터 500-1000만원의 금품을 제공받았다. 떡값 명목이었다.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MBC는 검사들의 이름을 비실명으로 처리했다.


 
사진 ② 2005년 8월 3일, 특별검사제 도입 및
​​이건희 회장 처벌 촉구 기자회견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X파일에 언급된 검사를 파악하라고 지시하고,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뼈를 깎는 자기반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그룹은 대국민사과문을 내놓았다. 검찰수사가 시작됐고, 주미대사로 있던 홍석현은 자진사퇴하였다.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밝혀야 한다는 여론은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때 유일하게 노회찬 의원이 이상호 기자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1_2
노회찬, 떡값 검사 명단
실명을 공개하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법사위 회의장에서 노회찬 의원은 ‘삼성그룹 비서실장 이학수와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의 대화록’을 읽어내려갔다. 2005년 8월 18일이었다.

 
-홍석현: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
-이학수: 할 만한 데는 해야죠.
-홍석현: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중략)
-홍석현: 김두희는 2천 정도. 김상희는 거기 들어 있으면 5백 정도 주시면은 같이 만나거든요. 석조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 그 다음 생각한 게 최경원.
-이학수: 들어 있어요.
-홍: 들어 있으면 놔두세요. 한부환도 들어 있을 거고. 이번에 제2차장 된 부산에서 올라온 내 1년 선배인 서울 온 2차장, 연말에나 하고. 지검장은 들어 있을 테니까 연말에 또 하고... (생략).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자들은 당대의 내노라하는 전현직 검사들이었다. 이들 7명 명단은 표와 같다.


 
표 ① 고발뉴스,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7인 명단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옳은 일이라면,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나는 한다."


 
특검이 실시되어야 한다.


 
노회찬 의원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데 그치지 않고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드러난 재벌그룹-정치권-언론사-국가권력기관의 검은커넥션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싸웠다.


 
사진 ③ 2005년 9월 9일 삼성그룹 본관 앞,
X파일 진상규명을 위한 촛불문화제

 
검찰이나 국정원이 사건 수사를 맡아서는 안 되고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삼성에 의해 오랫동안 관리된 검찰이 사건수사를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 이래 모든 대통령 선거에서 삼성그룹은 막대한 불법자금을 쏟아부었다.

- 2005년 7월 27일 프레시안 노회찬 기고글

 
노회찬 의원의 주장처럼 삼성그룹은 아주 오랫동안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해왔다.
 
알려진 것만 해도 이승만 정권 시절 자유당 정부에게 4억 2500만환(현재 가치로 최소 300억 이상)을, 전두환 정권 시절 총 220억 원의 뇌물을, 노태우 정부 시절 총 250억 원의 뇌물을 제공했으나, 이때까지 삼성그룹 총수가 실형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뿐인가. 1999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에게 삼성그룹 구조조정 본부가 5억을 전달했으나 어떤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고, 2002년 대선 직전 삼성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각 대선 후보 측에 총 385억여원을 제공했으나 역시 실형을 살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1997년 대선 당시의 불법정치자금 녹취록이 나왔으니 노회찬 의원이 “악의 커넥션을 끊으려면 특검뿐”이라고 주장한 것은 당연했다.



 

#1_3
응원과 지지가 넘치다. 그러나...


 
국민만 믿고 전진하십시오.
당신의 선택, 잘하신 것입니다.


 
떡값 검사 명단 공개 후 노회찬 의원은 국민들의 커다란 응원을 받았다.

 
“만약 의원님을 검찰에서 기소한다면 한 번도 촛불집회 같은 것 참여해본 적도 없지만 끝까지 참석해서 진실의 편에 서겠습니다.”

“회찬님이 아니고선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의혹은 국민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 본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떡검사들 실명 공개하신 거 자랑스럽습니다.”


“국민만 믿고 전진하십시오. 당신의 선택 잘하신 겁니다.”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진 ④ 2005년 8월 19일, 지지자가 보내준
시루떡과 메시지 카드


 
십시일반 후원이 이어졌고, 홈페이지 방문자는 폭주했다. 떡값 검사 명단 공개 단 몇 시간만의 일이었다. 당시 노회찬 의원과 함께 했던 박영선 보좌관의 글 중 일부다.


 
“떡값 검사 명단이 발표된 홈페이지 최근 뉴스 게시판과 보도자료 게시판의 댓글만 150여 개가 넘고, 방문자는 오늘 하루 몇 시간 동안 2만 명이 넘었습니다. ...(중략)...홈페이지에는 의원님께 주례를 맡아달라는 글과 함께 특별검사가 되어야 한다, 의원님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자랑스럽다는 지지 글과 사무실로는 격려전화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소액 2천 원부터 KT직원과 학원 강사, 학생들의 후원까지 후원금이 홈페이지를 통해 답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으로 지난 몇 달간의 후원 금액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실로 고맙고 눈물겹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공개가 한 방을 빗줄기 같다며 선뜻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의 정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X파일의 본질은
불법대선자금과 불법로비가 아니라
불법도청이다



 
사태는 쉽게 흐르지 않고 있었다. 처음 검찰은 공소시효가 완료되었다는 점, 증거자료가 불법적 도청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 사건을 수사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결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긴 했으나, 애초에 대통령은 ‘사건의 본질은 불법대선자금과 불법로비가 아니라 불법도청’ 이라며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8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도청 사실에 대한 수사는 이미 국정원이 자체 조사를 하고 있고 검찰 수사도 병행되고 있다. 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특검에 반대했다.
 
심지어 대통령은 "이상한 테이프가 하나 나와서 또 이회창 후보 대선자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회창 씨는 1997년 '세풍' 사건 때도 조사를 받았고, 지난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세 번째 조사를 받으면 대통령인 내가 너무 야박해 보이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2005년 8월5일)

노회찬 의원의 떡값 검사 명단 실명공개는 이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2 노회찬, 의원직을 박탈당하다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