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 선고가 내려졌다. 판사는 현재 국민의힘의 추천을 받아 헌법재판관이 된 조한창이었다.
사진 ① 2009년 2월 9일 1심 공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앞
판결요지는 이랬다.
“삼성이 특정 검사에게 떡값을 줬다는 주장은 (안기부 X파일) 녹취록에 의한 것인데 이는 떡값을 지급한 것이 아니고 예정한 것임에도 피고인의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돈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터무니 없는 논리였다.
최후진술에서 노회찬은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진실의 달은 바로 삼성 X파일"이라고 지적했고, 1심 판결 직후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처벌함으로써 진실을 은폐하는 데 일조했다."며 비판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 2013년 2월 14일, 의원직 박탈 선고 후 국회 기자회견
2009년 12월 2심에서 노회찬은 무죄를 받는다. 그러나 2011년 5월 대법원은 노회찬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 일부 유죄를 인정해 사건을 파기 환송한다.
주심 양창수 대법관의 논리는 이랬다.
“녹취록의 대화 시점은 노 의원이 내용을 공개한 시점으로부터 8년 전의 일...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하다고 할 수 없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며, 국회 외에서 보도자료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기자나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요컨대, 노회찬의 죄목은 공적관심사항이 아닌 떡값 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파일로 올렸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에 대통령이 수차례 입장을 밝히고, 법무부장관이 떡값 검사 명단을 확보하라고 지시하고, 국회가 특별법과 특검을 놓고 격돌하고, 삼성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으며, 8천억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았다.
2013년 노회찬 의원은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다. 이때가 그 유명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이다.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명단 공개 8년 뒤였다.
사진 ② 2013년 2월 14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 "정의란 무엇인가 - 국회를 떠나며"
국회를 떠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 X파일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 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2_3
노회찬, 국회를 '조기 졸업' 하다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더니
암 걸린 폐는 그냥 두고 멀쩡한 위를 들어낸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릅니까.
- 2013년 2월 14일 국회 기자회견
면책특권으로 인해 국회에서 직접 말을 하면 괜찮고, 보도자료를 '인쇄'해서 배포해도 괜찮으나, 인터넷에 올리는 것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 올린 내용이 공적관심대상이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으니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논리다. 이것이 사법부의 논리였다.
노회찬 의원이 2005년 8월 18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떡값 검사 관련 보도자료
"그날 (국회) 회의는 TV로 전국민에게 중계가 됐다. 몇십만명이 그 TV를 봤고. 인터넷에 올려서 본 것은 당시 조회수가 1만 4천 건에 불과했다. 대법원 홈페이지를 보니 그들도 보도자료를 대법원 홈페이지에 그대로 올리고 있더라. 또 국회의원의 공적 역할을 감안할 때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될 수 있는데 뇌물수수가 사생활이라니..."
<경향신문>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2013년 2월 24일
사실, 대법원 최종 판결 전 여야 국회의원 159명이 재상고심을 연기해달라는 탄원서를 올렸었다. 여야 152명의 의원들이 공동발의하여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상정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입법부의 고민을 무시하고 판결을 강행했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앞두고 159명의 의원이 선고연기를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질 거라고 봤는데 판결이 강행되어서 놀랐다. 처음 유죄를 내렸던 1심도 판결문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선고유예가 마땅하나, 과거에 나의 민주화운동 전과 때문에 선고유예가 불가하고 이 법에는 벌금형이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실형을 내린다고 변명하듯 판결문에 적었다. 그래서 법을 개정하려고 152명이 공동발의한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묵살했다는 것은 입법권에 대한 사법권의 과도한 횡포이자 폭력이다. 폐암환자 수술하라고 하니 멀쩡한 위를 제거한 형국이다."
<경향신문> "[유인경이 만난 사람] 의원직 잃은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2013년 2월 24일
사법부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최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기졸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노회찬 의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이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볼 때 이것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결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알려줘서도 안 되는 내용이다.
아이들에게 사회의 혐오감을 갖게 하는 반사회적 판결이다.”
- 2011년 8월 30일, 프레시안 인터뷰
이 인터뷰를 한 때가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문제로 한여름 길 위에서 30일 단식을 한 이후였다. 확실히 법원의 판결은 '반사회적'이었다. 그의 인터뷰를 조금만 더 따라가 보자.
“이 사건은 거대권력들의 결탁에 의한 용서할 수 없는 부패행위라는 것에 대해서 한나라당까지 모두 인정한 상태였다.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로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해서라도 처벌할 것은 처벌해야 한다는 데 여야가 모두 동의했던 사안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299명 중에 거의 99.9%가 두 개의 법안, 한나라당이 제출한 테이프 공개 법안과 당시 열린우리당 등이 제출한 공개 법안에 모두 서명을 했다.
(중략)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제대로 수사된 것도 없다. 누가 수사를 받았나? 나와 이상호 기자만 수사를 받았고, 나하고 이상호 기자만 재판을 받았다. 당시 홍준표 의원도 "노회찬은 무죄다"라고 제일 먼저 말을 하였다. 사회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수사를 안 해서 법무부 차관까지 있으니깐 수사를 하라고 했는데 법무부 차관이 있다는 것을 왜 공개했느냐는 것이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 결과를 받고 노회찬은 국회의원직을 상실한다.
영상 ② '국회를 떠나며'
- 2013년 2월 14일 대법원 최종판결 후 국회 기자회견
노회찬 의원이 떡값검사 명단 공개 후 의원직 상실까지의 상황이 포함된 영상입니다. 부디 끝까지 시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 4년 고생해서 졸업하는 것을
제가 8개월 만에 졸업을 해서, 조기졸업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