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편지-1991.08.06.

사실 누가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데 人間事가 그리 쉽게 풀리진 않는 모양입니다. 분단으로 인한 비극이 대체로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고 겪은 고통과 불행도 결코 그 개개인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역사의 큰 부담을 당대의 힘없는 개개인들이 다 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나운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말도 있지만 잘못된 정치와 역사적 파행이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다니 새삼 올바른 정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40년 동안이나 굳은 마음이지만 팔이 안으로 굽듯이, 봄이 되면 얼음이 녹듯이 잘 풀리리라 봅니다.

어제는 처와 친구가 다녀갔습니다. 오히려 바깥 사람들이 더 생활과 더위에 쫓기는 것 같고 저는 마치 시골 휴양지에 피서온 사람 같았습니다.

어느새 입추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더위가 좀 더 남았지만 마음은 이미 가을, 겨울로 달려갑니다. 장마비를 맞으며 해바라기의 키가 1m를 넘어섰습니다. 다알리아는 은퇴하였고 은행나무는 여전합니다. 사루비아를 갖다 놓을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렸다 국화를 갖다 놓을까 생각중입니다.